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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와 산 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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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문을 읽다가 혀를 찼다. 채소밭을 망친 개를 두들겨 팬 농부가 이틀간 구류를 살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농부는 채소도 기르고 개도 기른다. 채소는 두엄을 주면서 기르고 개는 두들겨 패면서 기른다. '훈육 방식'의 죗값치고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덜대는 나를 보고 아내가 '동물 학대'라고 우긴다. 그러더니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당신,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얼마 전 내 친구가 겪은 일이야." 손길이 푸근해 나는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아내는 조곤조곤 친구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구는 며칠째 안달복달했다. 망울이 음식을 마다하고 자리보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망울은 몰티즈종 수컷, 집안의 재롱둥이였다. 친구는 남편에게 망울의 증세를 알렸다. 고환이 물 풍선만큼 부풀어 오른 망울을 보고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가망 없는 암이었다. 진통제를 주사하고 남편이 출근한 그날 오후, 망울은 영면했다. 친구는 울먹이며 남편에게 전화했고, 남편은 저녁 약속을 미루고 달려왔다. 향년 17세. 인명으로 치면 칠순에 이른 나이라 천수를 누렸다. 그래도 망울이 떠날 줄 친구는 차마 몰랐다. 희디흰 털을 쓰다듬으며 부부는 하염없이 울었다.

친구는 애견 장례식장에 전화했다. 절차를 묻고는 망울의 유품인 옷과 목걸이를 챙겼다. 망울의 영정도 마련했다. 시신을 넣은 상자에는 흰 장미를 뿌렸다.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남편이 출근을 포기하고 서울 외곽의 식장까지 동행했다.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미리 연락했으면 2일장을 치러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운명 당일은 염습해 입관한 뒤 빈소를 차려 조문하고 다음 날은 발인과 화장하는 예를 갖출 수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할 수 없이 염습에서 화장까지 하루 만에 치렀다. 친구는 망울을 소홀하게 보내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친구는 망울이 입을 수의를 골랐다. 삼베도 있었지만 비단으로 했다. 망울은 5㎏이 넘지 않아 화장 비용이 기본인 15만원이었다. 오동나무에 입관하거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려면 돈을 더 내야 했다. 납골당은 경건하고 호화로웠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친구는 망울을 그곳에 두면 외로울 것 같아 유골을 들고 가기로 했다. 운구할 때 리무진을 이용하는 장엄한 장례 절차도 있었다. 그 비용은 100만원쯤 든다고 했다. 친구는 빈소에 영정을 놓고 조촐한 영결식을 거행했다. 망울이 즐겨 먹던 사료를 제수로 올렸다. 언뜻 보니 향을 사르고 절을 하는 이웃 상주도 있었다.

절차에 따라 장례식장 직원이 제문을 읽었다. 애조 띤 목청을 듣자니 한층 숙연해졌다. '오늘 망울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우리가 준 사랑보다 망울이 준 사랑이 더 큽니다. 누구도 그런 사랑 베풀지 못합니다. 망울은 가도 사랑은 남았습니다. 하늘은 망울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친구 부부는 방성대곡하고 말았다.

한 줌의 유골로 남은 망울을 항아리에 담아 오면서 친구는 흐느꼈다. 부부는 집 부근 철쭉나무 아래에 유골을 뿌렸다. 망울은 철쭉꽃을 보면 늘 꼬리를 흔들었다. 망울이 가고 난 집은 텅 빈 듯했다. 친구는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친구는 빈 유골 항아리에 장미꽃을 꽂았다. 꽃을 보면 망울의 얼굴이 겹쳤다. 퇴근한 남편이 그 꽃을 보더니 눈시울이 빨개졌다. 남편은 말했다. "저 꽃 시들게 하지 마." 남편은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망울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망울이 살아온 듯 친구는 울컥했다.

얘기를 끝낸 아내는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서, 이 얘기 왜 한 건데?" 아내가 입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암튼, 살아 있을 때 잘하라고요." 아내는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예, 아버님,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 아비가 아버님 안부 여쭌 지 오래됐다고 그러네요. 바꿔 드릴게요." 나를 훈육하는 아내의 방식이 농부와 달라 고맙다.

손철주 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