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 "수해 땐 겨우 살았지만, 이제 살길이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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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때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살아나니 이젠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이번 수해에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거문리 주민들은 응급 복구로 급한 불은 껐지만 답답한 마음은 여전하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더 막막하기 때문이다.

◆비는 그쳤지만 속은 타 들어갈 지경
비 피해가 일어난 지 한 달 가까이 지나 기본적인 응급복구는 해결했지만 산사태로 인해 토사가 밭을 뒤덮어 농민들은 수확 할 꿈도 못 꾼다. 수마가 할퀴고 간 뒤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 상당수의 농민들이 출하를 포기했다. 계속되는 비로 인해 감자와 배추 등 고랭지 채소들이 뿌리부터 썩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쓸모 있는 것들은 모자라는 일손과 연일 계속되는 더위에 수확이 어려운 상태다. 강원도농업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 고랭지 밭에서 나는 채소는 전국 여름 채소 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하며 이중 대부분이 진부에서 생산된다.

토마토를 재배하는 거문리 주민 이재욱(54)씨는 “500평의 수출토마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첫 수확을 1주일 남기고 피해를 입어 가슴이 아프다”고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남은 농작물도 전부 물에 잠겨 썩어버렸다”면서 “눈 앞이 깜깜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거문리에서 몇 십 년간 고랭지 채소를 재배해온 김진영(68)씨도 “겨우 살았지만 앞으로 살 걱정에 한숨만 나온다”며 “그나마 자원봉사 하던 사람들마저 떠나면 그 다음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부면의 한 공무원은 “몇 해 전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었던 강릉은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번 피해로 같은 절차를 밟을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농가 일손 돕기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되면서 그나마 지속되던 봉사활동도 많이 줄어들었다. 진부면사무소 공무원들도 휴일도 반납한 채 불철주야 비상근무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이번 피해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지속적인 봉사가 필요하다. 진부면사무소 자원봉사 담당 공무원 전복순(28) 씨는 "하천이나 도로 등의 응급복구는 마무리 되었다"며 "이제는 어지럽혀진 밭과 농작물 수습과 같이 농민들의 생계와 관련한 2차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문리 이장인 이찬균(52)씨는 “산사태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빠져있다”며 “농작물의 90%가 못쓰게 되었고 그나마 쓸만한 것들도 제 값을 못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문리에는 노인 가구가 많은데 이들은 일손이 부족해 막막해한다”며 “봉사자들을 이 분들께 먼저 배치하지만 점점 봉사자들이 줄어들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문리에는 환갑을 넘은 노인들이 전체 주민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예순 넘은 아들이 팔순을 넘긴 어머니를 모시는 집은 당장 밭에 뒤덮인 토사도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평창자원봉사센터에 의하면 처음 수해가 발생한 직후에는 수 천명의 봉사자들이 자원했지만 이제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자원 봉사자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던 NGO들마저 철수하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진부면 호명리 이장 전홍석(55)씨는 “봉사활동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심각한 상황은 지나 이제는 농가의 일손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집은 이제 흔적도 없고, 컨테이너 안은 한증막
-“돈 부족해 집 대충 고치면 또 다시 피해” 하소연

평창군 진부면 시내 근처에 있는 체육공원에는 30여개의 컨테이너가 있다. 이번 수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 중 머무를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5.5평의 임시거처이다. 오후가 되자 이재민들 대부분은 컨테이너 밖 그늘에 앉아있다. 폭염으로 인해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나마 차양막을 설치했지만 뜨거운 햇볕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다행히 지금은 지붕을 설치하기로 결정 나서 한숨을 돌린 상태이다. 진부면에 따르면 현재 진부면에 설치 된 컨테이너는 54동이라고 한다.

하진부리 주민인 김성옥(49)씨는 “정부 지원금 900만원과 국민성금 500만원 가지고는 집터에 기둥 밖에 못 세운다”며 “집이 전체 파손(전파)되어도 집을 지어야 지원금이 전부 나온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반파로 신고하고 신고 하고 대충 고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 중 생계를 잇기 어려운 노인들이 많아 또 태풍이 오면 꼼짝없이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다”라며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진부면사무소 지방 건축 공무원 김태호(38)씨는 “토지와 건물 소유자가 서로 다르거나 하천부지에 집을 지었던 사람들은 반파로 신고해서 고쳐 쓰는 경우가 많다”며 “전파로 신고하면 토지 소유자가 건물을 신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반파로 신고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천부지는 국가소유이기 때문에 법이 제정된 73년 이후로는 법적으로 건축물을 신축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다. 그는 “반파로 신고한 사람들은 보상금도 적고 건물 고칠 돈도 부족해 결국 이도 저도 못한다”며 “태풍이 한 두 차례 남았다는데 이들에겐 막막할 뿐이다”고 덧붙였다.

평창=최중혁(성균관대 경영학과), 강은지(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김지연(연세대 아동가족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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