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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변호사의내고장희망찾기] ⑦ 아산시 거산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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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거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화전 만들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도시에서 아이들이 몰려온다

"나는 우리 학교가 좋다. 느티나무에서 보이는 하늘과 햇빛이 찬란하다."

충남 아산시 송학리의 거산초등학교. 학생 수가 줄어들어 1992년 분교로 격하됐다. 2001년엔 전교생이 34명밖에 안 돼 폐교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 학교에 기적이 일어났다. 2002년 124명으로 갑자기 학생이 늘더니 2005년 학생이 132명이 돼 다시 본교로 승격됐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인구 감소로 폐가가 속출하는 농촌의 한 마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2년 아산 지역의 학부모들과 함께 글쓰기 연구회 모임을 갖고 있던 초등학교 교사 6명은 폐교 직전인 거산초등학교를 살리겠다며 교육감을 찾아갔다. 이들은 "인간적 교류가 가능한 학교에서 일하고 싶다"며 교육감을 설득해 그해 3월 6명의 교사가 한꺼번에 이 학교로 전근을 왔다.

교사들은 시민단체.학부모들과 머리를 맞대고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맞췄다. 학습시간도 아이들 생체리듬에 맞춰 운영한다. 수업시간은 45분이지만 조금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교육과정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살린다. 그 과정에서 교사.학부모.아이들이 함께한다. 학부모의 역할을 최대한 존중한다. 연간 교육평가를 할 때 교사는 교사대로 평가하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평가해서 그 다음해 교육과정에 반영한다. 교사.학부모 연석회의를 반별로, 학교 전체로 자주 연다. 학교 현안이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학부모들은 도우미를 넘어 교과과정 작성과 수업에 참여한다. 지난 겨울에는 학부모와 교사가 심화연수를 함께 받았다. 학교에서 연수비를 대고 공주대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 박장진(55) 교장은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교육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떡도 해 먹고, 냉이를 캐서 국도 끓여 먹고, 화전도 부치며 자연과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교사가 어떤 수업을 하겠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자료도 모아오고 함께 진행도 하고 하나가 되어 함께 가꾸는 학교가 됐다.

김영주(45.여)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놀고 싶을 때 실컷 놀린다. 이제 아이들은 '너무 실컷 놀아서 중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말한다. 토론과 글쓰기를 많이 시키다 보니 많은 학생이 상위급 실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한다.

사실 거산초등학교는 불안정하다. 교사들이 한 곳에 5년만 있기로 돼 있어 곧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이들이 떠나면 거산초등학교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교원 인사, 교과 편성 등의 경직성을 풀어줘야 한다. 일반 학교에서도 일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하면 자율성을 확대해 나가고 허용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공교육 안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농촌에서 도시로 간 아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밀려드는 날이 올 것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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