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척 단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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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석 선생의 글 가운데 『오척단구』라는 수필이 있다. 그 수필을 보면 조선조 선조 때의 문인 이수광의 유머 한 토막이 소개되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난쟁이가 비대한 사람을 비웃는 말이 『말을 타니 다리가 땅에 끌리고 /방으로 들어가다 이마부터 부딪는 도다. /배꼽에 불을 켜면 양초 대신이 될 것이요 /다리는 갈라서 사앗대를 삼을만하도다.
이번에는 비대한 사람이 난쟁이를 비웃는 말이 『갓을 쓰니 발이 보이지 않고 /신을 신으면 정수리까지 들어가고 마는 도다. /길을 가다 쇠발자국 물만 보아도 /겨자씨 껍질로 배를 건느려는 도다.
여기서 대인이니 소인이니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정신이 아니라 육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석은 단구다. 6·25 나던 해 재어 본 자신의 키가 1m42·6 cm, 몸무게는 43·6씨이었다. 그래서 탁 호는「대추씨」라고 불렸다. 「작다」는 뜻도 있지만 「단단하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일 석에게는 키에 관련된 일화가 많다. 한번은 어떤 친구가 『웬 안경이 하나 걸어오기에 이상도하다 생각했더니 가까이 닥쳐 보니 아, 자넬세 그려』라고 놀렸다. 당시는 눈이 나빠 안경을 끼고 다녔던 모양이다.
어느 자리에선가는 사회를 맡아보게 되었는데 한 짓궂은 친구가 하는 말, 『자네는 서나 앉으나 마찬가지니 앉아서 하게』라며 좌중을 웃겼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거구의 친구 한사람과 양복을 맞추러 갔다가 일석은 단구 덕에 양복 값을 깎을 수 있었다. 그런데 키 큰 친구가 양복을 맞추려고 하니 주인이 값을 더 내라고 해서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제값을 물고 양복을 맞추었다. 모두 『오척단구』라는 수필에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단구의 일석을 두고 아무도 소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조선어 학회 사건 이후 이 땅의 어문 연구를 위해 내디딘 그의 큰 발자국은 대인중의 대인이었다.
평소 담배와 술은 물론 코피까지 멀리한 일석은 자신의 건강 비결을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음식을 먹을 때 서른 번을 꼭 씹어라. 도중에 세던 것을 잊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서른 번을 세라』고.
성실, 정직, 겸허를 신조로 삼고 일생동안 외길을 꼿꼿이 걸어온 일석, 그는 이 시대의 사표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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