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꽃 핀 「프라하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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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체코 공산당 지도부가 마침내 연 8일 동안 계속된 대규모 군중시위에 굴복했다. 체코 공산당 지도부는 24일 긴급 소집된 당 중앙위 임시 총회에서 일괄사표를 제출, 3명 정치국원 중 7명의 사표가 수리됨으로써 새로운 당 지도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 87년 12월 당 서기장에 취임, 2년 동안 체코를 지배해 온 야케스 서기장은 이날 당 중앙위에서 현 사태를 몰고 온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남으로써 동독의 호네커, 불가리아의 지프코프에 이어 불과 한달 남짓 동안에 권좌에서 실각한 세 번째 동유럽 지도자가 됐다.
이번 야케스 체제가 총 퇴진한 것은 한마디로 68년「프라하의 봄」당시 소련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에 올랐던 보수 강경 세력인「68년 세대」의 종말을 의미, 앞으로 체코 공산당지도부는 싫든 좋든 개혁노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새로 당 서기장에 오른 카렐 우르바네크는 정치국원으로 당 조직 담당의 중요직책을 맡아왔지만 중앙정치 무대에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이다.
체코 공산당이 이처럼 젊고 무명의 인사를 최고 지도자로 발탁한 것은 그 동안 체코지도부에 항상 붙어 다녔던 68년 체코사태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떼어버리고 당시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당의 대국민 이미지를 개선해 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우르바네크 신임 서기장은 우선 완전붕괴 상태인 체코슬로바키아 지도부를 다시 구성하고 국민의 개혁요구를 폭넓게 수용하는 한편,「시민 광장」등 반체제 세력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 중앙위 임시총회는 그 동안 강경파의 반발이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돼 왔으나 전체 지도부의 사임·신임 서기장 선출이 별다른 잡음 없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져 뒤늦게 나마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당 간부들이 인식한 것 같다.
체코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보이던 군부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사회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군부의 개입 경고를 했던 문제의 발언당사자인 바츨라비크 국방장관의 음독설이 전해짐으로써 그의 경고가 군부 전체의 의사가 아니었음을 추측케 하고 있다.
한편 반체제 세력들은 이번 체코 공산당 야케스 체제의 퇴진을 그들의 승리로 인정, 20년만에 다시 찾아온「프라하의 가을」의 기쁨에 들 떠 있다.
특히 최근 사태변화와 함께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68년「프라하의 봄」의 주역이었던 두브체크 전 공산당 서기장은 24일 프라하 시내 바츨라브 광장에 나타나 약30만 군중을 향해 20년 전 자신이 추진했던 개혁의 실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연설, 군중들로부터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현재 체코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두브체크는 우르바네크 신임 서기장이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경우 당의 최고지도자로 다시 컴백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이 같은 지도부 퇴진에도 불구하고 27일 전국적으로 2시간 동안의 총파업을 추진중인 시민광장 등 반체제 세력들은 현재 전국의 6백63개 사업장이 파업참가 의사를 표시해 왔다고 밝혀 공산당에 보다 확실한 개혁요구의사 표시를 촉구하고 있다.
체코사태의 또 다른 변수였던 소련 측은 23일 체코정부에 대해 강경 진압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시한데 이어 야조프 소련 국방장관이 체코에 주둔 중인 8만명의 소련군에 대해『현지사태에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체코 군부의 사태 개입 가능성에 대해 간접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번 중앙회 임시총회가 예상과 달리 강경파들의 큰 반발 없이 끝난데 대해 지난번 동독·불가리아의 경우처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모종의 역할을 행사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있으나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마디로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돼온 지난 20년의 체코역사에 대한 청산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20년 전「프라하의 봄」으로 피어난 꽃이「프라하의 가을」로 결실을 보는 역사적 순간으로 간주되고 있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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