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들려주는 탐라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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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이 전하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제주섬 탄생 신화의 주역이자 거대 여신(女神)인 '설문대할망'은 500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흉년이 들자 그 아들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고, 자식들이 나간 사이 어머니는 죽솥에 몸을 던졌다. 아들들은 그것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여느 때보다 맛있는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돌아온 막내는 죽을 먹으려다 어머니의 뼈를 찾아냈다. 형제들은 '어머니'를 부르며 슬피 울다 한라산 영실계곡의 바위가 됐다. 제주를 지키는 '오백장군'이라 부르는 한라산의 바위는 그렇게 생겨났다."(민속학자 고(故) 김영돈 정리)

화산폭발로 120만년 전 탄생한 제주도.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 제주도에 지난 6월 문을 연 '제주 돌 문화공원' (www.Jejustonepark.com)이 새로운 신화의 산실을 꿈꾸고 있다.

한라산 허리를 관통하는 5.16도로를 따라 제주섬 동부지역으로 승용차를 내달려 한시간 여,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에 이르면 눈을 의심하게 된다. 기생 화산 '바농오름'을 뒤편에 둔 웅장한 공원은 공원 매표소를 찾아가는 진입로부터 독특하다.

고려 삼별초가 몽고군과 맞서 싸운 항파두리 성을 연상하는 성곽형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아담한 초가가 나온다. 매표소다. 옛 제주 초가의 원형을 되살렸다. 처음부터 완전 '제주적'이다.

공원은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19계단을 올라 20톤이 넘는 대형 암석 40여 개가 만들어 준 '기억의 통로'를 지나면 높이 5~12m의 대형 방사탑(防邪塔 .액을 쫓기 위해 제주의 마을마다 쌓았던 돌탑) 9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설문대할망과 그 아들들을 형상화 한 방사탑 바로 앞에 대형 연못이 있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은 죽솥을 의미한다.

이어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가면 돌 박물관을 만난다. 지하로 파들어간 건물은 지상에 흘러 넘치기를 반복하는 야트막한 연못을 지붕으로 얹었다.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장소에 지은 건물이다. '자연은 최대로, 인공은 최소로'를 모토로 내건 이 박물관의 유일한 현대 건축물이다.

박물관은 철저히 제주섬 탄생과정을 지질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각종 암석의 표본을 보여주며 풍부한 영상으로 제주도를 설명한다. 제주의 자연에 그동안 널려 있던 기기묘묘한 형상의 자연석들이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모두가 '자연이 빚은 최고의 예술작품'들이다.

그 돌들은 실내 전시관을 채우다 넘쳐 야외로까지 위용을 뽐낸다. 1만4400여 점이나 된다. 선사.고려.조선.현대를 거친 제주의 돌 문화가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숲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3시간여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살피고 출구로 나오면 48기의 돌하르방이 버티고 있다. 퉁방울 눈에 벙거지 모자를 쓴 '똑 같은' 돌하르방이 아니다. 제주도 전역에서 저마다의 형태를 지녔던 마을 고유의 돌하르방 원형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지금 공원이 보여주는 것은 1단계에 불과하다. 지금은 411억원을 투자, 30만평을 관람객들에게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2020년엔 최종 100만평의 매머드급 위용을 준비중이다. '설문대할망'의 전신을 형상화 한 미술관 등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주 신화의 무대가 되겠다"는 제주시의 구상이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어린이2500원이다. 문의: 064-710-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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