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상술(상)|"모험 있는 곳에 이익있다"씨티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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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나라 시장 개방 속도가 점차 가속화 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 전략도 다양해졌다. 때로는 우리 정부에 특혜를 요구하고 때로는 자국 정부를 통해 통상 압력을 가중시키기도 하나 보다 선진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우리 나라 시장에서 발판을 넓히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상술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씨티 은행 사무실에 가장 많이 보이는 표어다.
이 표어가 말해주듯 씨티 은행은 공격적인 은행으로 정평이 나있다.
돈 장사를 하는 만큼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세계 금융계 풍토에서 씨티 은행은 사뭇 예외적이다.
라이벌인 아메리카 은행이 캘리포니아에 본거지를 두고 부유층·농민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사업을 하면서 보수적 기품을 정립하고있는 사이 씨티 은행은 은행이 난립해있는 뉴욕에서 출발, 적자 생존의 원칙 아래 공격적인 사풍을 길러왔던 것이다. 양도성 예금증서 (CD)를 처음 개발, 남들이 앉아서 예금을 받고 있을 때 밖으로 뛰어나가 돈을 끌어들이고 다른 은행이 감히 생각도 못하던 시절인 19세기말 아르헨티나에 해외 지점을 설치, 국제 금융의 새로운 장을 연 것도 씨티은행이다.
이 때문에 1812년 설립 이래 1백78년 동안 씨티 은행은 87년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게다가 87년의 경우도 중남미 국가에 대한 막대한 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8억 달러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이를 제외하고는 매년 평균 10억∼12억달러의 흑자를 냈던 것이다.
씨티 은행의 자산은 88년 말 현재 2천7백60억 달러(1백4O조원) 로 체이스맨해턴 아메리카 은행를 제치고 미국 내 1위의 위치를 고수하고있다.
이 오늘의 예금고는 1천2백4O억 달러, 대출 잔액은 1천5백23억 달러이며 미국내 1천1백45개, 해외 2천1백35개 등 3천2백30개 지점에 8만9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씨티 은행은 엔고 등으로 급격한 발전을 보인 일본계 은행들을 제외하고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금융계의 1인자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씨티은행이 우리 나라에 진출한 것은 지난 67년9월, 체이스 맨해턴·동경 은행에 이어 외국계 은행으로서는 3번째다.
그러나 이 은행은 6·25 동란이 채 끝나지도 않은 지난 53년 우리 나라에 이미 지점 살치를 신청한바 있다.
이 같은 씨티 은행의 공격적 성격은 이후의 대한 진출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73년 우리 나라의 외환 사정이 극히 어려울 때 씨티 은행은 주간사 은행이 되어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2억 달러를 빌려오는가 하면 경부 고속도로에 들어갔던 해외 차관의 상당부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른 은행이 위험하다고 주저할 때 한발 앞서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 씨티 은행의 주요 경영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에는 한국 정부에 대해 영업 수지 보장 등 특혜를 요구함으로써 한국 은행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씨티 은행의 전략은 작년 12월 은행 금리가 일부 자유화되자 더욱 진면목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년 만기 지급시 31%의 이자 (연리15·5%) 를 지급하는 「슈퍼신탁」을 내놓는가 하면 최고 10년 기한의「내집마련 대출」을 새 상품으로 내놓았다.
내집 마련 대출 역시 대출 1년 후 원금을 갚거나 계약을 다시 해야하는 우리 시중 은행의 번거로움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일부에서는 씨티 은행이 국내 금융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덤핑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온실 속에서 나태하게 자라온 국내 은행이 씨티 은행의 과감한 경영 전략을 배워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다.
국제화·개방화의 시대에서 씨티 은행은 국내 은행들이 맞서 싸워야할 엄연한 상대다.<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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