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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8·15 특별기고

해방 76주년, 지금 더욱 절실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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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과 코로나 위기에도 우리 선수단의 도쿄 올림픽 승전보로 답답한 숨을 내쉬게 된다. 8월로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동양평화’라는 거창한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 한·일합방이란 무리한 악수를 두었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해방의 기쁨, 그러나 얼떨결에 3·8선으로 나라와 민족이 두 쪽으로 갈린 황당한 충격으로부터 76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충격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것 같은 우리가 새삼 동양평화를 거론하는 것은 아직도 한반도와 동북아가 전쟁의, 특히 핵전쟁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제시한 한중일 평화체제 #한반도 핵전쟁 막는 지렛대 역할 #피폭 경험한 일본이 적극 나서야 #중국도 북한 비핵화 끌어낼 책임

올림픽은 지구촌 인류사회가 공동 운명체임을 인식하며, 전쟁을 예방하고 공존공영의 평화를 함께 다짐하는 최대 축제다.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던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을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돌이켜보기조차 거북한 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딱한 운명이었다. 그러한 우리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동서 냉전시대를 마감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적 쾌거라고 오래 기억하게 된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이 동서 양 진영의 보이콧으로 올림픽 자체의 존속이 불확실한 위기에 빠졌다가 세계적인 민주화 운동의 흐름을 타고, 1987년 평화적 선거와 정권 이양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서울에서 모든 올림픽 회원국이 참가한 지구촌 대축제를 성공적으로 주최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1964년 도쿄, 1988년 서울, 2008년 베이징으로 이어진 여름올림픽 성공과 나가노, 평창, 다가올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겨울올림픽 개최는 한·중·일 동북아 3국도 세계평화 축전인 올림픽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단순히 국제 스포츠 발전에 기여함을 넘어서 동북아가 유럽과 더불어 전쟁을 넘어선 평화시대로의 약진을 이끄는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는 코로나 사태로 개최 여부가 걱정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국민의 결단,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리더십으로 성공시킨 쾌거로 기억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축하함이 마땅하다.

815 특별기고 이홍구

815 특별기고 이홍구

1910년 제국주의 시대의 악습으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을 군사력으로 위협 및 점유했던 어두운 시대에, 한국의 민족적 저항과 독립운동은 아시아의 평화를 회복하자는 이상주의를 앞세운 것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지휘한 이토 히로부미 총리를 총격한 안중근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처형 전에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동양평화를 함께 달성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호소한 명저였다. 1919년 3월 1일 전 국민이 전국적으로 궐기했던 독립운동에서도 한·중·일이 동양평화를 함께 모색하자는 호소가 ‘독립선언문’의 중심을 이뤘다.

무더운 8월이 오면 삼복더위를 어렵게 넘기는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막을 내린 1945년 8월 15일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한민족의 해방을 뜻하며, 독립과 자유를 실감하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일본인은 제국의 시대를 끝낸 패전을 착잡한 심정으로 기억하리라. 그러나 일본은 물론, 많은 한국인과 아시아의 이웃은 1945년 8월 초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경험한 원자폭탄 세례를 잊지 못할 것이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최초의 핵폭탄은 단숨에 15만 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현지에 거주하거나 전시에 징용되어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던 한국인도 상당수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기에 일본인과 한국인은 핵무기의 무서운 파괴력을 처음으로 실감한 사람들이며, 지구촌의 다른 이웃보다도 비핵화를 전적으로 추진하는 데 앞장서는 시민들이다.

특히 누구보다도 희생자가 많았던 일본은 유일하게 핵 폭격을 경험한 시민으로서 지구촌의 비핵화 운동과 노력의 기수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고 있다. 앞으로도 일본 국민과 정부는 지구촌의 핵 반대, 비핵화운동, 핵확산금지 노력의 적극적 중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믿어진다.

한국인 피폭 희생자는 일본보다 훨씬 적지만 바로 이웃에서 이를 경험한 한국도 적극적으로 일본의 입장에 동참할 것이다. 1991년 남한과 북한은 핵무장과 핵전쟁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함께 발표한 바 있다.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대표하는 유엔의 다섯 상임이사국의 하나인 중국은 그 책임의 막중함을 철저히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무시하는 예외 사태는 없도록 동아시아 비핵화를 정착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도 여전히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NPT로 복귀한다면 유엔의 제재는 해제될 것으로 믿어진다. 이는 곧 북한 경제난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에 만났던 한 베트남 지도자의 언급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전쟁을 통해서 얻을 것이 없다. 따라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베트남과 미국과의 관계는 낙관할 수 있다.”

사실 미국과 북한이 적대 관계를 유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지난 6월 한국전쟁기념일에 필자가 지적했듯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에는 미군이 없었다. 북한의 대남 기습으로 미군이 한국전에 참여하게 된 경위는 모든 당사자나 관계국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전에 북한이 NPT 조약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복귀하고,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비핵화에 모범을 보여주면서 동아시아 평화 증진에 앞장선다면 다음 겨울엔 한·중·일 3국은 물론 전 세계 올림픽 가족이 즐겁게 베이징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