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지뢰밭' 뛰어넘은 노련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셰리 스타인하우어가 4라운드 3번 홀에서 파퍼팅에 성공한 뒤 갤러리의 박수에 응답하고 있다. [리덤 AP=연합뉴스]

매서운 비바람에 시달리느라 30도쯤 기울어진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장의 고목들은 따스한 햇볕과 잔잔한 바람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 간간이 가벼운 빗방울이 휘날렸지만 '바람과의 전쟁'으로 불리는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평화롭다.

땅 속에서는 다르다. 골프장 곳곳에 입을 벌린 200여 개의 벙커가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사냥하고 있다. 빨리 빠져나가려 조바심을 낼수록 잔인한 벙커들은 먹잇감을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2라운드부터 비바람이 거의 없었는데도 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4라운드 경기 중인 6일 자정(한국시간) 현재 이글이 총 28개인데 비해 더블보기가 280개가 나왔다. 트리플보기 이상 대형 참사도 89번이나 터졌다. 특히 벙커에서 만용을 부린 젊은 선수들의 희생이 컸다.

미셸 위(위성미)는 15번 홀에서 두 차례나 벙커에 빠지면서 트리플보기를 했다. 다시 벙커에 빠진 9번 홀에서 더블보기, 18번 홀에서도 역시 벙커에 발목이 잡혔다. 합계 6오버파 중위권으로 경기를 끝냈다. 1언더파 공동 12위로 4라운드를 출발한 크리스티나 김(김초롱)도 마찬가지. 1번 홀(파3)을 트리플보기로 시작했고, 8번 홀 더블보기, 9번 홀(파3)에서는 +5타인 8타를 치며 무너졌다.

이 지뢰밭을 노련한 노장들이 잘 건너가고 있다. 44세의 셰리 스타인하우어(미국)가 8번 홀까지 8언더파로 3타 차 단독 선두다. 46세의 줄리 잉크스터와 50세인 베스 대니얼, 42세의 로리 케인이 3언더파 공동 4위다. 대회 출전 선수 중 대니얼의 나이가 가장 많고 잉크스터, 스타인하우어 순이다.

한국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김주미(하이트맥주)와 한희원(휠라코리아)이 나란히 2오버파를 쳤다. 양희영은 합계 13오버파로 경기를 끝내 최고 아마추어상을 받았다.

리덤=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