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범의 문화탐색

색동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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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아이보리 원피스 위에 두른 짙은 남색 숄에 띠처럼 수놓인 색동 무늬가 영롱하다.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시에는 소매와 등에 색동 처리를 한 한삼 드레스를 입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한 김정숙 여사의 패션이 화제다. 대통령 부인인 만큼 으레 ‘패션 외교’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김정숙 여사의 색동 패션은 국제 행사에서 한국적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일 테니 ‘패션 외교’라기보다는 ‘외교 패션’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음양오행→현대 패션
장식 추방, 조형의 합리화
탈주술인가, 재주술인가

최근 이태원에 문을 연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색동 무늬를 적용한 제품이 다수 선보였다. 런칭을 위한 영상물에도 ‘이날치 밴드’의 노래 ‘범 내려온다’의 안무를 맡아 이름을 알린 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의 색동 무늬 옷을 입고 춤을 춘다. 대통령 부인의 색동 패션, 해외 명품 브랜드의 색동 디자인, 현대무용 그룹의 색동 의상... 갑자기 웬 색동인가.

“장식은 미개인이나 범죄자들이 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식은 비합리적 정신의 산물이자 노동의 낭비이기 때문에 현대의 문명인에게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전통 사회에서 장식은 신분과 종족을 드러내는 차별의 기호였다.

G7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색동 무늬 패션을 연출한 김정숙 여사. [연합뉴스]

G7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색동 무늬 패션을 연출한 김정숙 여사. [연합뉴스]

조선 시대에는 사회 집단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색상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상대에게 흔히 묻곤 하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은 애초에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지 취향과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무늬는 왕의 독점물이고 다홍치마는 처녀만이 입을 수 있었다. 그러한 질서를 확실하게 고정시키는 것이 바로 장식이라는 조형 문법이었다.

모던 디자인이 장식을 반대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장식에 달라붙어 있는 신분과 차별의 징표를 없애려고 한 것이었다. 그것은 조형의 민주화를 위한 ‘탈주술화’였다. 막스 베버는 근대화란 합리화이며, 합리화는 탈주술화라고 말했다. 다만 인류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장식을 단지 주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것은 물어야 할 일이다. 모던 디자인의 장식 추방이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린 것인지, 아니면 아이를 버리기 위해서 목욕물을 버린 것인지는 분명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던 디자인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장식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오늘날 장식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의미에 매여 있지는 않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색동무늬 의상. [사진 노블레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색동무늬 의상. [사진 노블레스]

색동은 말 그대로 색을 동 댄 것이다. 동은 ‘한 칸’을 가리키니 색동이란 색을 칸칸이 이어붙인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한국인이 좋아하던 배색이며 특히 아이들 옷에 많이 사용했다. 색동은 시각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음양오행이라는 전통 사상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색동이 주술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색동 무늬를 보고 무당 옷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속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말이다.

색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프랑스 국기의 파랑·하양·빨강은 각기 자유·평등·우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상징한다. 삼색기의 의미는 주술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이다.

나는 김정숙 여사의 색동 패션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된 것으로서 음양오행이라는 상징성으로부터는 벗어난 것으로 본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등장한 오방낭 주머니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거기에는 주술성이 치렁치렁 달려 있었고, 그녀의 국정 운영 내내 무속적 이미지가 따라다녔던 것도 결코 우연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정숙 여사의 색동 무늬를 패션 요소로만 보지 않고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느니 어쩌니 하는 의미를 덧씌우고 싶어한다.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의미의 제로 상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색동의 의미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또한 주술화(음양오행)와 탈주술화(현대 패션)와 재주술화(민족주의)라는 의미의 연쇄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보는가를 통해서 거꾸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색동 하나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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