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현안 셋 중 하나는 테이블 올려야 올림픽 참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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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가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참석 여부를 놓고 일본 측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했다.

청와대, 정상회담 조건 최후통첩 #답변 데드라인은 이번주 초 제시 #일본, 각국 인사 15분회담 원칙론 #외무성 내 “역사문제 양보 안 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의 최종 입장은 일본과 풀어야 할 3대 현안 중 최소한 하나에 대해서는 성의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문 대통령의 방일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 측이 끝까지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문 대통령의 개막식 불참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후통첩의 ‘데드라인’으로 “이번 주 초반”을 제시했다. 청와대가 제시한 3대 현안은 위안부·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핵심 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다. 이 관계자는 “모두 정상회담 한 번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입장은 한·일 정상이 시급한 현안에 대해 최소한 협의라도 시작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은 당초 핵심 현안 전부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정상들이 ‘원샷 담판’을 해야 한다고 했던 초기 제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일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성과’의 의미와 관련해서도 당초에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세워왔지만, 일본 측의 사정을 고려해 ‘협의의 시작’도 성과로 수용할 수 있다고 ‘눈높이’를 낮춘 것”이라며 “이러한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이제는 일본 정부가 성의 있게 답을 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 변화의 배경은 청와대가 한·일 관계 개선을 그만큼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일 샅바 싸움은 씨름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씨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샅바 싸움은 없다”고 적었다. 현재 한·일 양국의 입장 조율이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기 싸움’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일본과의 물밑 조율을 통해 “최소 1시간의 회담 시간은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스가 총리는 각국 주요 인사와 만나는 일정을 고려해 1인당 원칙적으로 15분 정도의 회담을 고려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특히 “일본은 역사 문제에서 양보하면서까지 문 대통령이 오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까지 전했다.

외교가에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결국 최소한의 명분을 만들어 일본을 방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올림픽 개막 직전 한·미·일 외교차관 회동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3국의 외교장관들이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방일 역시 미국이 대중·대북 정책의 전제로 요구하고 있는 핵심동맹의 복원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방일은 남은 임기 문재인 정부가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문제와도 직접 연관돼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초 제시했던 조건을 대폭 낮춰 대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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