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포장대서 실수로 가져온 사과 한 봉지…헌재 “절도 기소유예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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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트에 진열된 사과. 연합뉴스

한 마트에 진열된 사과. 연합뉴스

마트에서 자율포장대 위에 놓인 사과 1봉지를 무심코 가져왔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처분을 취소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0월 서울 도봉구의 한 마트 자율포장대에서 B씨의 사과 1봉지를 훔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는 인정하되 피해 정도 등을 참작해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다.

당시 B씨는 마트 자율포장대에서 물건을 포장하다가 사과 1봉지를 실수를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마트에서 장을 다 본 A씨가 같은 자율포장대를 이용했고 이때 B씨의 사과 1봉지도 함께 집어넣은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해 사과봉지를 마트에 놓고 온 것을 알게 된 B씨는 다음날 서울도봉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했다.

경찰은 마트 회원정보조회 결과 등을 바탕으로 A씨에게 연락했고 곧바로 출석한 A씨에게 사과봉지를 임의 제출받았다.

이후 검찰은 A씨의 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고, A씨는 이 기소유예 처분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당시 A씨가 B씨의 사과를 자신이 산 사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A씨는 사건 당일 마트에서 이 사건 사과봉지와 같은 사과를 구입했다”며 “A씨가 노령이고 당시 후두암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과 신체가 몹시 불편했던 점을 함께 고려하면, 청구인이 자율 포장대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면서 순간적으로 이 사건 사과봉지를 자신이 구입한 사과로 착각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사진에 A씨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둘러본다거나, 사과봉지를 유심히 살펴보거나 자신이 구입한 사과와 비교해 보는 등 미필적으로라도 절도의 고의를 인정할 사정은 찾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경찰 수사기록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탓에 A씨의 의사를 막연히 확장 해석한 결과”라면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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