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토바이 시끄러워, 걸어서 배달해주세요"…이런 리뷰갑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외식쿠폰' 사업이 시작된 5월 24일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 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외식쿠폰' 사업이 시작된 5월 24일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 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새우튀김 갑질 리뷰’로 한 분식점 업주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자영업자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리뷰 갑질’ 인증샷이 올라오며 피해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2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배달앱 이용률이 높아진 이후 소비자 갑질 사례가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정의당 6411민생특별위원회 등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배달앱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배달앱 이용 자영업자 가운데 리뷰ㆍ별점이 매출에 영향을 준다고 답한 응답자가 74.3%에 달했다. 또 설문에 참여한 자영업자의 63.3%는 별점 테러나 악성 리뷰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비스 강요하는 ‘리뷰 거지’?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매일 배달앱 리뷰 갑질 사례가 적지 않게 올라온다. 주로 악성 리뷰로 인한 매출 하락을 우려하거나,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다.

이들 사이에선 리뷰를 빌미로 서비스를 요청하는 손님을 ‘리뷰 거지’라고 칭한다. 리뷰 이벤트가 없는데 리뷰를 쓰겠다며 추가 음식을 요구하거나, 리뷰를 약속해놓고 서비스만 취하는 식이다. 분식집 업주 A씨는 “서비스로 제공되는 품목이 아닌데 달라고 하는 손님이 종종 있다”며 “원칙대로 주문 건만 배달했더니 고객센터에까지 전화해 트집을 잡더라. 그 이후로 그런 주문 건은 취소한다”고 했다.

환불 요구 사유도 가지각색이다. 냉면집 사장 B씨는 배달 주소를 잘못 적은 뒤 연락이 두절된 고객에게 되레 환불요청을 받고 별 1개짜리 리뷰 테러까지 받았다고 한다. 남양주시에서 업장을 운영하는 C씨는 “순대 소금을 안 줬다고 밤에 한 시간 동안 환불해줄 때까지 전화가 왔다”고 했다. 초반 평점이 중요한 새로 오픈한 가게만 노려 별점 1점을 남긴 뒤 “환불해주면 리뷰를 내려주겠다”고 한 뒤 음식을 공짜로 취하는 부류도 있다.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리뷰갑질' 사례. 온라인 캡처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리뷰갑질' 사례. 온라인 캡처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소비자는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가족들이 다 깨니 주차를 멀리해주시고 걸어서 배달해주세요”라고 요구하거나 “4일 전 시켜먹은 피자가 맛이 없다. 피자에 곰팡이가 피었다”고 리뷰를 달기도 한다. 이 사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무개념’이라며 질타를 받았다.

배달앱을 이용하는 업주들은 리뷰가 다른 손님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크다고 입을 모은다. 횟집을 운영하는 D씨는 지난해 “형편없다”는 신랄한 내용의 리뷰를 받고 그 여파로 3~4일간 주문이 확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주꾸미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항상 정량으로 나가는데, ‘전보다 양이 줄었다’는 리뷰가 올라온 이후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리뷰를 달더라”고 말했다.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리뷰갑질' 사례. 온라인 캡처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리뷰갑질' 사례. 온라인 캡처

“IT기업의 책임, 모니터링 강화해야”

자영업자 카페에 올라온 ‘리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글에 한 이용자는 “리뷰를 없애자는 건 작은 개인 가게는 문 닫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대형 프랜차이즈만 이득을 본다”고 반발했다. 리뷰 시스템이 사라지면 손님들은 검증된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찾기 때문에 리뷰 시스템을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리뷰 시스템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좋게 만드는 것은 사회가 변화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배달앱은 영세 자영업자를 플랫폼으로 엮어 비즈니스를 하는데, 소비자들은 자영업자를 대형 기업 대하듯 한다”며 “업주들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등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IT기업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허석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별점 1점을 받게 되면 그 영향으로 다음날 매출이 30~40%가량 떨어진다”며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별점을 높게 받기 위해 음식 퀄리티를 높이기보다는 이벤트 등 마케팅에 신경을 쓰게 돼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와 자영업자 간 접점을 찾아야 한다”며 “별점을 매길 때 재구매율 등을 합해 평점으로 산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