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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을 공격 못하는 '5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4일 한반도 전문가 존 페퍼가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에 기고한 글을 소개했다.

신문은 그가 주장한 5가지 이유를 △북한의 군사력이 실제로 미국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고 △부시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당장 가동할 정도로 자신 있는 상태가 아니며 △지상전을 펼쳤다간 오히려 일본이나 한국의 미군기지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더 이상 전쟁을 할 여력이 없으며 △한반도 전쟁을 원치 않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등으로 요약했다.

다음은 프레시안이 소개한 존페퍼 글 전문.

7월 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사건은 미국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언론인들은 북한의 위험성을 미국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과장된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여기에 훨씬 신중하게 반응했다. 토니 스노우 백악관 대변인은 즉시 미사일 사태를 비정상적으로 부풀린 미국 언론들의 해석을 부인했고 기자들에게도 정부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과 언론의 엇갈리는 반응 사이에서 일반 독자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날, 부시 정부는 '상상 속의' 대량살상 무기를 과장해서 설명했다. 극소의 이란 핵 프로그램이 전 세계를 괴롭힐 것이라고 부풀리기도 했다. 앞의 두 경우와 비교했을 때,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정말 미국답지 않게 침착하다. 결국 북한은 핵무기와 그것을 옮길 수 있는 능력까지 갖고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북한은 이라크가 갖지 못했던 것과 이란이 이제 갖고자 하는 것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이라크와 같은 '악의 축' 국가들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을 특별 대우하는 다섯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실제 군사력을 알고 있다. 북한 군사력이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협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본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의 무기는 구식이다. 현대화된 군사력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군인들이 많긴 하지만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훈련이 잘 된 편도 아니다. 장거리 미사일은 제 기능을 못할 뿐 아니라 핵무기도 아니다. (북한이 핵물질을 갖고 있지만 핵물질로 무기를 만들었다는 징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물론 북한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전쟁 억지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미국 역시 북한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바로 미일간 군사 동맹을 강화시키고 태평양에 수만의 군대를 배치할 수 있게끔 하는 MD(Missile Defence)의 이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허약한 정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는 아무런 실제적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2. 부시 행정부는 미국 MD 시스템의 실제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을 맞추지 못할 수준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본다.

MD국 국장인 헨리 오버링 공군 중장은 북한이 총알을 한 발 쏘면 미국이 그 한 발을 쏘아 맞출 수 있을 정도라고 MD의 성능을 자신했었다. 미 국방성은 지난 10차례의 시험으로 50%의 성공률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험은 모두 적당한 숫자를 얻어내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 국방성의 무기 평가를 담당한 필립 코일은 실제 상황에서라면 성공률이 20% 주변에서 맴돌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MD를 '허수아비 방어 시스템(scarecrow defence)'이라고 불렀다.

실패율이 이 정도인 마당에 부시 행정부가 자신만만하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할 수는 없다.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평양의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가동을 도발했다가는 도리어 MD가 허풍이었음을 증명해 내는 꼴을 보일 수도 있다. MD국은 2007년까지 100억 달러를 목표로 기금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 기금에 대한 미 의회의 허가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MD가 실패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거의 1300억 달러나 쏟아 부었는데 그 돈은 어디다 썼느냐는 의회의 추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3. 전쟁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모든 선택이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공격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 그렇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 북한의 군사력은 냉전 시대의 소련이나 2003년 침공 당하기 전의 이라크의 군사력 보다 훨씬 못하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북한이 이빨 빠진 호랑이란 얘기는 아니다. 북한은 지상에서 이뤄지는 공격을 막을 수도 있고 공중 포격에서도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장거리 혹은 단거리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일반 주민이나 기반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이나 일본 내의 미군기지가 심각하게 파괴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4. 미국의 군사력은 무한 자원이 아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육군과 해군은 움직일 수가 없다. 동 아시아에 쏠렸던 관심은 다시 레바논 사태로 쪽으로 쏠려 있다. 7월 10일 발행된 잡지 <뉴요커>에 따르면 미국 작전 사령부는 부시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이란에 대비할 주요 공습 훈련 계획을 짰다고 한다. 수단이나 소말리아의 소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노력은 거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간단히 말해 미국 정부는 지금 당장 북한을 처리하기 위한 어떤 지적, 물적 자원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위기 상황이 닥치면 국방성이 전력을 재배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이 대략 2년 정도는 잠자코 있어 주기를 더 바랄 것이다.

5. 부시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의 푸틴 및 중국의 후진타오와 전화 통화한 사실을 거듭 언급했다. 이들이 관건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협조는 이미 얻었다. 사실 일본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미국보다 훨씬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다. 부시는 남한의 입장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은 귀찮게 여길 정도다. 그러나 부시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협력은 각별하게 챙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을 채택할 때도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얻기 위해 양 국과 상당 부분을 절충했다. (피터 헤이스가 노틸러스 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북한이 발사에 앞서 사전 통지를 하지 않았다는 게 결의안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였다.) 특히 부시 정부는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해결되길 간절히 바래 왔고 베이징은 북한의 계좌를 동결시키라는 미국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미국의 요청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던 중국이었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대북한정책과 관련하여 양손이 묶여 있는 형국이다. 북한과 협상을 통한 타결은 보수파로부터 '유화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게 뻔하다. 군사적 대응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북한에 대한 정밀제한폭격으로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시키자는-윌리암 페리와 애시턴 카터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촉구했던 것과 같은-제안은 현 정부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미국의) 외교관도, 장군도 (북한정책과 관련해서는) 수갑을 차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바로 현 정부의 방치전략(default strategy)이다. 북한을 공격하지도 않고,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하지도 않은 채, 서서히 북한에 대해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강력한 국제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때문에 당장 취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저 부시행정부는 남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포기할 것을 조용히 설득하면서, 다음 번 대선에서 야당(한나라당)이 승리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북한정권이 붕괴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북한의 붕괴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부시행정부로 하여금 현재의 방치전략에서 벗어나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제대로 된 방안을 마련하도록 나서게 할 방법은 없을까?

비교정치학 강의를 조금 해야겠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전쟁으로 인해 당초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얻으려 했던 국제적 관심은 상당부분 감소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국가도 아닌 무장세력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 전쟁을 하면서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왜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해야만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아주 강력한 교훈이 된다. 워싱턴이 북한지도자 김정일을 아무리 깔본다 해도 그는 엄연히 한 국가의 지도자이며, 더 중요한 것은 세계를 지배할 야욕도 능력도 없다는 (세계는커녕 한반도를 통일할 능력도 없다) 사실이다. 9.11사태 직후 북한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미국을 이를 거부했다. 힘없는 국가로서 북한은 이웃나라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강대국들과의 협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멸적인 지하드(聖戰)를 통해 강대국에 타격을 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외교정책에 관한 한 완벽한 무능력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원한다면 부시행정부는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야만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그래도 북한은 '악의 무리' 중에서 그래도 가장 양질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과의 거래는 아무래도 94년 제네바 합의의 씁쓸했던 추억을, 무엇보다도 우익진영으로부터의 분노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들린 올브라이트나 일본의 강경파 아베 신조처럼 전혀 이질적인 정치가들도 김정일을 만나고 나서는 한결같이 그에 대해 '합리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김정일과의 협상이야말로 부시행정부가 외교정책에서 공적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아닐까.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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