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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의 기업 가치가 과대평가됐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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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자료: 모건스탠리 보고서 캡처

자료: 모건스탠리 보고서 캡처

한국 배터리 기업에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들이닥친 것인가. 최근 외국계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K배터리의 기업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보고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전기자동차(EV)를 비롯한 차량용 배터리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제2의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정반대다.

외국계 IB 리포트 잇따라 등장 #모건스탠리 등 투자의견 낮춰 #“신규 사업자 등장…경쟁 압력” #“실질 위협 가능성 적어” 반론도

"배터리 신생업체 등장해 경쟁과열"

1일 삼성SDI의 주가는 전일 대비 0.2%(1000원) 오른 61만6000원에 마감했다. 지난 31일 4% 가까이 하락해 이날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됐지만, 강보합에 그쳤다. 장 초반에는 주가가 60만6000원까지 밀리며 한때 '60만원 선'을 위협받았다.

삼성SDI의 주가 하락에는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보고서가 방아쇠 역할을 했다. 지난달 30일 모건스탠리는 "신규 사업자 등장으로 인해 배터리 제조업체 간 경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며 삼성SDI에 대한 투자의견은 ‘중립’에서 ‘비중축소’, 목표 주가는 57만원에서 55만원으로 낮췄다. 앞서 LG화학도 크레디트스위스(CS)의 매도 보고서가 나온 직후인 지난달 26일 시가총액이 6조원가량 증발했다. CS는 LG화학의 적정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도 중국 CATL(45배)의 절반 수준인 22배로 책정했다. 주식 시장에선 PER이 낮은 회사일수록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K배터리를 타깃으로 삼은 매도 보고서를 놓고 “국내 증권회사가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외국계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기업 3~5곳의 독과점 체제가 굳어진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 산업의 경우, 한국 기업이 과점 지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전기차와 맞물리면서 여러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배터리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역시 “전기차 시장은 10년간 연평균 20% 성장하겠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의 수익성은 경쟁 심화로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업계의 잇따른 배터리 내재화 전략 

자동차 업체의 잇따른 배터리 내재화 전략도 K 배터리의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 폴크스바겐만 하더라도 유럽 스타트업 '노스볼트'와 향후 10년간 140억 달러(약 14조5000억원)어치의 배터리셀(배터리의 기본단위) 계약을 체결했다. 테슬라 임원을 지낸 페테르 칼슨이 2016년 설립한 노스볼트는 스웨덴·독일에 각각 4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노스볼트의 배터리 개발·설계 단계부터 직접 참여한다. 사실상의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LG와 SK가 공급했던 파우치형(얇은 막 형태의) 배터리 비중은 폴크스바겐에서 상당 부분 축소된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각형 배터리. [사진 CATL홈페이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각형 배터리. [사진 CATL홈페이지]

완성차 메이커가 K배터리의 대체재를 찾는 이유는 원가 경쟁력 측면이 크다. 완성차 입장에선 전기차 원가에서 30~40%에 달하는 배터리 비중을 낮추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사용하는 같은 원통형 배터리라 하더라도 LG 제품은 중국 CATL에 비해 약 20% 단가가 비싸다. 삼성SDI도 수익성 위주의 전략 차원에서 배터리 경쟁 입찰에서 다른 업체 대비 높은 단가를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부터 CATL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고, 현대차도 향후 중국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의 사용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이날 "CATL을 비롯한 중국계 업체들의 유럽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글로벌 경쟁 환경이 더욱 치열해지고 가열될 것"이라며 "국내 3사는 성장 전략 재정비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전망했다.

국내 증권업계, "다소 지나친 분석"  

다만, 국내 투자업계에선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에 대해 반론도 나온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생 배터리 업체의 진입, 완성차의 내재화 전략 등이 5년내 한국 배터리 업체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부각될 가능성은 적다"며 "균일한 품질을 담보하며 대량 양산을 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있는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부장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K배터리 업체의 수익성이 낮다는 분석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매도 리포트까지 쓰는 건 무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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