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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美 배터리 시장 공들일 때···中, 유럽에 돈 쏟아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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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각형 배터리. [사진 CATL홈페이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각형 배터리. [사진 CATL홈페이지]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전 세계 배터리 산업의 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미국에선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 LG, SK와 각각 배터리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노골적인 자국 업체 밀어주기를 하는 중국 시장에선 CATL·비야디(BYD) 등이 안방을 차지했다. 북미·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인 유럽에선 중국이 대대적인 현지 투자를 앞세워 한국 업체를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CATL, 2조 들여 독일 생산기지 #파나소닉, 노르웨이 공장 계획 #한국업체는 폴란드·헝가리 거점 #탄소배출 규제 엄격한 유럽 #전기차 시장 규모 중국 넘어서 #현지화 체제로 공략해야 승산

CATL, 獨에 2조 투자해 생산기지 구축     

31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 폴크스바겐그룹 아우디의 최신 전기차 'e트론' 시리즈에는 LG, 삼성, 그리고 중국 CATL 배터리가 탑재됐다. 전기차 출시 초기만 하더라도 아우디는 LG·삼성의 배터리를 썼지만, 최근앤 CATL의 납품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배터리는 한국 제품에 비해 단가가 20%가량 저렴하고, 유럽에서 중국에 차량을 수출할 때도 CATL 배터리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 배터리 판매량 세계 1위에 오른 CATL이 점유율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는 이유다.

CATL은 최근 옛 동독 지역인 독일 튀링겐 주에 총 18억 유로(약 2조4500억원)를 투입해 생산 거점을 세우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생산전략인 '현지생산·현지소비'(지산지소)에 최적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올 연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 연간 14기가와트시(GWh)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2025년에는 연간 100GWh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100GWh는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생산규모(70GWh)을 훨씬 뛰어넘는다. 80㎾h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를 약 125만대 만들 수 있는 규모다. CATL이 독일에 공장을 짓는 것은 폴란드(LG에너지솔루션)나 헝가리(삼성SDI·SK이노베이션)에 있는 국내 업체보다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자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 세계 지역별 자동차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전 세계 지역별 자동차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CATL은 이미 독일에서 주요 완성차 업체와 끈끈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독일 다임러 그룹은 지난해 8월 CATL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주행 시 배터리 용량 최적화, 에너지 밀도 개선 등 연구개발(R&D)도 공동 진행하고 있다. 벤츠의 최신 전기차 '더 뉴 EQS'에도 CATL의 배터리 셀이 들어갔다. CATL이 배터리 셀(배터리의 기본 단위)을 공급하면, 다임러의 슈투트가르트 공장에서 배터리 완제품으로 만든 뒤 벤츠 전기차에 탑재한다.

BMW도 2019년 11월 CATL과 73억 유로(약 9조5000억원) 규모의 각형 배터리 계약을 체결했다. BMW는 2013년 첫 전기차 'i3'를 출시했을 때만 하더라도 삼성SDI 배터리를 썼지만, 최근 들어 CATL에 주문량을 늘렸다. 올 3월 "각형 배터리를 표준으로 쓴다"고 발표했던 폴크스바겐 역시 CATL과 계약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파우치(얇은 막 형태)형 배터리에 장점이 있는 LG·SK와 달리 CATL은 폴크스바겐이 채택한 각형 배터리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테슬라도 유럽에선 CATL 선택  

미국 기업인 테슬라도 베를린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할 전기차에 CATL 배터리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의 독일 공장은 내년 초 가동 예정인 테슬라의 베를린 기가팩토리와 200마일(약 320㎞) 떨어져 있다. 테슬라의 기존 파트너였던 파나소닉은 지난해 10월 북유럽 노르웨이에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유럽 내 공장 부재로 경쟁 업체에 넘겨줬던 테슬라 물량을 되찾기 위한 시도다. 스웨덴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해 전기차 140만대가 팔려 중국의 시장 규모(130만대)를 넘어섰다. 유럽의 엄격한 탄소배출 규제로 인해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다퉈 전기차 판매를 늘린 덕분이다.

유럽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이 배터리 증설 경쟁을 펼치는 것은 미국과 중국 시장은 이미 배터리 지형이 굳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라 미국의 GM과 포드는 한국의 LG와 SK를 각각 파트너로 결정했다. LG와 SK는 각각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와 선벨트(북위 37도 이남 남부)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미국에 진출한 독일이나 일본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중국 차량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국 차량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VW도 유럽·중국서 CATL 배터리  

중국에선 자국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정책에 따라 K 배터리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전기차 기업들이 가입한 '중국기차동력전지산업창신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CATL의 중국 점유율은 50%, 그다음은 BYD가 14.9%를 차지했다. 폴크스바겐도 미국에선 SK 배터리를 공급받지만, 중국에선 CATL 배터리를 탑재한다. 중국에 진출한 SK의 경우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현지 기업(EVE에너지)과 49대 51 비율로 합작하는 방식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선 K 배터리 기업이나 현대차 모두 미국·유럽에서 현지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됐다"며 "한국을 대량 생산 기지로 삼는 전략은 더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공장은 결국 반도체처럼 '마더 팹' 역할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마더 팹은 생산 규모는 적지만, 고부가가치 기술을 선행적으로 도입하는 곳이다. 배터리 생산은 자동차업체의 공장 부근으로 달려가 현지에서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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