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닥 경제에 재신임 충격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과 이에 뒤따른 국무위원들의 일괄 사표, 반려 사태로 경제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어려운 경제를 가까스로 헤쳐가던 기업이나 국민은 하나같이 깊은 우려 속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를 꺼리는 재계가 '재신임 철회'를 요구했던 것도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으로 경제가 결딴날 것 같다는 절박감에서였을 것이다.

경제주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면 재신임 선언은 여기에 기름을 부어 리더십 상실과 국정 공백을 자초한 일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할 투자와 소비는 적어도 총선 전후 재신임 정국까지 되살아나기 힘들어졌다. 현 정권 출범 뒤 잇따른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렀는데 대통령이 다시 이를 증폭시킴으로써 경기의 조기 회복도 물 건너간 셈이다.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는 대외 신인도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국가 위험도를 주요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신용등급 방어에 불리해질 수 있다. 금융시장이야말로 정국 불안에 가장 민감해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경우 외국인 투자도 위축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경제장관들이 흔들림없는 국정수행을 말하지만 공직사회의 동요도 걱정이다. 정치권 움직임에 민감한 관료사회가 복지부동의 자세를 보인다면 부동산 투기 억제와 자유무역협정 비준, 위도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건설, 농산물시장 개방 등 굵직한 현안들이 표류할 우려가 더 커진다.

경제를 더 가라앉지 않게 하려면 경제관료들이 사표를 거론하기에 앞서 더 철저한 각오로 뭉쳐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 나가야 한다. 또 경제가 정치에서 독립해 시장논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민생만큼은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중요한 일은 재신임을 묻기로 했으면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미 국정 혼란은 불가피해졌고 그 속에서 그나마 경제를 구해 내는 길은 논란을 서둘러 종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