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이광재의 손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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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다. 실세 중 실세다. 뛰어난 기획력이 그의 장점이다. 부드러운 인상과 말투 또한 강점이다.

그가 술잔을 받는 모습은 아주 특이하다. 언제나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싼 채 술잔을 쥔다. 아주 공손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은 다른 이유가 있다. 오른손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은 반밖에 없다. 절단됐기 때문이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문들은 많았다. 여러 갈래다. 병역기피 소문이 그중 하나다. 운동권 내부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자신의 의지를 보이려고 그랬다는 얘기다. 그러나 본인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언젠가 측근의 입을 빌려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연세대 83학번 운동권이었다. 시위혐의로 도피생활을 한 적이 있다. 8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그때 서울 구로동의 한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눌려 잘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시점과 정황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걸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손가락 얘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나는 당시 민족 민주 전선이라는 민민투 기관지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때 김세진.이재호가 분신했지요. 나도 분신해 죽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지금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쪽 손가락이 자랑일 순 없지만 부끄럽진 않다는 투였다. 그는 이렇게 매듭지었다.

"어찌 됐든 내 양심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얘기 자체를 회피했다. 그나마 얘기한 건 군대 때문은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본인으로선 소상히 밝히기 싫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론도 그 문제를 짚지 않았다. 한때 몇몇 언론이 취재를 하다 말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이쯤에서 본인 스스로 그때를 다시 생각했으면 해서다. 그 충고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잘랐건 잘렸건 그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잘랐다면 잘린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을지 모른다. 얼마나 두려움이 앞섰겠는가. 잘렸다면 자른 것보다 더한 비참함이었을지 모른다. 왜 공부를 해야 할 대학생이 기계를 만져야 했단 말인가. 잘랐건 잘렸건 그것은 그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시대의 아픔이었다. 그 아픔을 간직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의 초심(初心)은 바로 그 아픔이었다. 그 아픔이 있어야 자신의 좌표도 찾을 수 있다.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한 사건에 그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다.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당사자인 본인은 강하게 부인했다.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이 판가름을 해줘야 할 상황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게 된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12일 이렇게 말했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대통령의 애국심과 순수함을 알려 드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절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곤 빌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힘과 용기를 달라고.

그러나 그가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다. 빌 필요도 없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에 앞서 본인 스스로 몸가짐에 주의했어야 한다.그랬다면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그가 잃어버린 초심을 다시 찾길 바란다.

이연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