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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장 선점 위해 모빌리티 ‘아토즈’ 구축 속도 높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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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13면

[SUNDAY CEO 탐구] 정의선 현대차 회장

‘견고한 투자’(solid investment). 현대자동차의 요즘 행보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평가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내실을 충분히 다지면서도, 모빌리티의 미래를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평가도 같다. 현대차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1배로 경쟁사의 8~9배에 비해 높은 편이다. PER는 시가총액이 연 이익의 몇 배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높으면 높을수록 미래가치가 크다는 의미다.

“신성장 동력으로 대전환 첫해” 강조 #5년간 8조 4000억 미국 현지 투자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역량 강화 #전기차 플랫폼 E-GMP 무기 장착 #연료전지 시스템 등 수소 주도권도

이런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경쟁사들에 비해 폭넓고 힘 있게 미래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폴크스바겐·BMW·벤츠 등이 전기차 제조에 치중하는 데 비해 현대차는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 구축부터 자동차 설계·부품·생산, 소프트웨어·판매·서비스·콘텐트까지 모빌리티 전 영역(A to Z)을 아우르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 회장에 오른 뒤부터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을 위한 신기술에 대한 투자도 지속해서 확대하여 미래시장을 선점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13일 미국에서 2025년까지 미국에 5년간 74억 달러(약 8조40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의 현지 생산과 모빌리티 집중 육성에 나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직접 투자 전략을 구상하고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까지 신성장 동력에 60조 투자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현대차의 신성장 동력은 모빌리티 관련 제품과 서비스, 수소 솔루션 등 크게 세 축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 전략’에서 2025년까지 이들 부문에 60조1000억원을 투자해 경쟁력을 높이고 2040년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드설리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2025년(3400만 대)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2030년 누적 판매량 1억2120만 대, 2040년 6억3670만 대에 달할 전망이다. 산술적으로 현대차가 매년 320만 대의 전기차를 팔면 10%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리더십을 쥔 가운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두 측면의 멀티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제조 분야의 핵심 무기는 지난해 12월 공개한 전기차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다. E-GMP는 모듈화된 통합 플랫폼으로 세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모델의 생산라인을 단기간에 구축하고, 일관된 품질을 낼 수 있다. 올해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E-GMP를 활용해 전기차 23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해외 모빌리티 플랫폼들의 전기차 요구에 맞춰 맞춤형 제작에도 나선다.

정 회장은 부족한 부품·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인수·합병(M&A)를 통해 보완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전장부품 전문기업 미국 앱티브와 2019년 9월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했고, 지난해 말에는 로보틱스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더불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역량도 강화해 친환경 도심형 이동 수요 증가에도 대응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사에서 ‘환경보호’와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을 핵심 키워드로 꼽으며 “모든 고객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이동수단을 구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 모빌리티 전략의 특징은 독자적인 자율주행기술과 더불어 공유자동차 등 플랫폼 운영 서비스에도 나서는 점이다. 모셔널은 2023년부터 미국 2위 차량공유서비스업체 리프트와 함께 자율주행으로 운행되는 로보택시 서비스를 확대한다. 더불어 싱가포르 그랩과 인도 올라, 호주 카 넥스트 도어 등 2017~18년 투자한 회사와도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다. 러시아에서도 스콜코보혁신센터와 모빌리티 사업을 협력하고 있다. 현대차가 1월 애플과의 전기차 협업 논의를 중단한 것도 플랫폼 기업으로서 생태계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소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솔루션 분야 리더십 확보에도 나선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을 고도화함으로써 선박·기차·UAM 등 전 수송영역에서 보급, 수소 생태계 이니셔티브를 확보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수소도시 생태계와 관련해 현대차의 거점인 울산을 소개하며 “정부 보조금으로 수소차 넥소 보급이 늘고, 석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간 82만 t의 수소를 사용해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생태계를 정돈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현대차가 맞닥뜨린 변화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1999년과도 비슷하다. 2000년대는 세계적으로 자동차 공급 과잉으로 경쟁이 치열했고, 완성차 업체 간 이합집산이 활발했다.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에 인수됐고, 유서 깊은 다임러도 매물로 팔려 다녔을 정도다. 디젤·하이브리드차의 부상과 도요타·혼다 등 일본 브랜드들이 약진했다.

정 회장도 그간 시장의 변곡점에서 승부사로서 성공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2009년 기아자동차 대표 시절 ‘K시리즈’를 히트시키며 브랜드 정체성을 새로 세우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또 2015년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도 독립 출범시켰으며, 고성능 세단인 N브랜드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순환출자 고리 끊어 지배구조 개선 숙제

다만 정 회장이 미래성장 동력을 밀어붙이는 데 걸림돌이 있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지 못해 지배구조가 불안하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4개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고, 창업자 일가가 그룹 핵심인 현대모비스·현대차의 지분 보유량이 적다. 정 회장의 현대차·현대모비스 지분은 각각 2.62%, 0.32%에 불과하다.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 상속을 받는다고 해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을 기업공개(IPO)해 그룹의 지주사격인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의 밑천을 마련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고,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상승하면 정 회장은 2조5000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2018년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정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다만 3년 전보다 반대 여론이 크지 않은 점은 호재다. 유지웅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변화의 핵심으로, 현대엔지니어링 IPO가 이뤄지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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