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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인, 더는 ‘아기 사자’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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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리그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삼성 원태인은 요즘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는 게 즐겁다. [연합뉴스]

리그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삼성 원태인은 요즘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는 게 즐겁다. [연합뉴스]

원태인(21·삼성 라이온즈)은 요즘 명실상부한 프로야구 최고 투수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부터 야구장을 드나든 꼬마가 데뷔 3년 만에 KBO리그를 평정하고 있다. 원태인의 아버지인 원민구(64) 전 협성경복중 야구부 감독은 “아들이지만 더는 내가 가르칠 게 없다”며 뿌듯해했다.

다승 선두 나선 삼성 3년 차 에이스 #19년 1차 지명받고 삼성 입단해 #실업팀 간 부친 대신 프로 꿈 이뤄 #삼성 5년여만의 선두 일등공신

아버지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뻔했다. 원씨는 1984, 8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거푸 고향 팀 삼성의 지명을 받았다. 만약 입단했다면, 훗날 부자가 같은 유니폼을 입는 역사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씨 선택은 프로가 아닌 실업 야구였다. 짧고 화려한 프로 생활보다는 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는 가장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 실업 야구선수는 은퇴 후 모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프로의 꿈은 아들이 대신 이뤘다. 원씨는 고사리손으로 야구공을 겨우 쥔 다섯 살 아들이 스피드건에 시속 60㎞를 찍는 걸 보고 뒷바라지를 결심했다. 원태인도 ‘삼성 선수’가 되는 날을 꿈꾸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협성경복중 재학 당시 서울 학교로부터 전학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원태인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게는 아버지와 형이 가장 소중했다. 대구를 떠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몸담을 뻔했던 ‘삼성 1차 지명’만 생각하며 야구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2019년 삼성은 신인 1차 지명 선수로 경북고 졸업 예정인 투수 원태인을 뽑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등판하는 날마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기도한다.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한 건 최근 등판인 7일 롯데 자이언츠전이었다. 등판 전날 산에 올랐던 아버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 아들은 관중석의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7이닝 1실점으로 역투해 시즌 5번째 승리를 따냈다. 원태인의 3차례 홈경기 성적은 3승 무패, 평균자책점 0.90이다. 대구에 오면 아버지의 ‘기도 효과’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올해 원태인 성적은 아버지 기대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6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1패, 평균자책점 1.18이다. 쟁쟁한 외국인 선수를 다 제치고 다승과 평균자책점 선두(10일 기준)로 나섰다. 최근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한 덕분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탈삼진(39개), 투구 이닝(38이닝), 이닝당 출루 허용(WHIP·0.95), 피안타율(0.204) 모두 상위권이다. 9이닝당 탈삼진(9.24개)과 삼진/볼넷(4.88)도 국내 선수 1위다. KBO 공식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가 계산한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역시 2.36으로 1위에 올랐다. 흠잡을 데 없는 전방위 활약이다. 눈부신 활약에 ‘감투’도 따라왔다. 지난달 맹활약했던 다른 선수를 모두 제치고, KBO 4월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기자단 투표에서 32표 중 31표를 받았다. 팬 투표에서도 59.2%의 지지를 얻었다.

원태인 자신도 얼떨떨할 만큼 놀라운 발걸음이다. 그는 “요즘 자꾸 내 기록을 확인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웃었다. 팀과 함께 빛나고 있어 더 뿌듯하다. 원태인을 앞세운 삼성은 올 시즌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도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5년간 쌓인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한을 확실히 풀어버릴 기세다.

원태인은 오래전부터 ‘삼성 1차 지명’과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보고 뛰었다. 하나는 2년 전 이뤘고, 다른 하나도 눈앞에 다가왔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야구 대표팀은 그 어느 때보다 ‘에이스’가 필요하다. 원태인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도,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도 없는 대표팀 마운드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원태인은 “최근 김경문 (대표팀) 감독님이 날 칭찬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을 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도 생겼다. 올해는 꼭 올림픽 출전과 포스트시즌 진출을 모두 해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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