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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바 존의 문화산책

양파 같은 영화 ‘미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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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에바 존 한국프랑스학교 사서

에바 존 한국프랑스학교 사서

“영화 전반부에는 사실 농사짓는 것 말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 학교의 어떤 학생이 영화 ‘미나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종종 이와 비슷한 평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회 문제, 정신적 고통, 연인 관계나 가족 관계의 불화 등 어떤 주제를 다루든 간에 프랑스 영화는 이런 식의 비판을 흔하게 듣는다. 결국 나는 어느 정도 과대 광고에 떼밀려, 2021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미나리’를 관람했다. 앞서 들은 학생의 혹평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의견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나리’를 감상하고 고찰하면서 나는 이 영화가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깨닫고 놀랐다.

다양한 생각할 거리 주고 #자녀 눈으로 부모 보여줘 #미국인 광신자 묘사 불편 #열연 배우, 감독에 갈채를

먼저, 위 학생의 촌평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미나리’는 액션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나, 데이비드 린치의 사랑스럽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스트레이트 스토리’처럼 조용하고 단순한 정서를 지닌 영화다. ‘스트레이트 스토리’처럼 ‘미나리’는 아름다운 빛과 와이드 샷, 감독의 뛰어난 미학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특징을 지닌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주하고 잠드는 법이 없는 거대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이런 연출이 기분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박물관이나 음악회에서 사색적인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때와 비슷했다.

문화산책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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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미나리’를 처음 보았을 때 회의적인 인상을 주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미나리’에는 초반부터 감상적이고 다소 상투적인 요소들이 내내 눈에 띄었다. 이야기는 아칸소 주 한복판에서 전개되지만 영화 내내 이상화(理想化)된 한국이 드러난다. 한국은 여느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제이콥과 모니카가 그리워하는 고향이자, 그들의 자녀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고향이다. 할머니가 가져온 고춧가루와 멸치를 본 딸은 고향의 맛을 연상시키는 냄새를 맡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운 고향을 상징하는 인물인 듯한 할머니는 손자에게 화투(고스톱) 치는 법을 가르치는데, 화투 역시 전통적인 한국 문화를 나타내는 유명한 요소다. ‘미나리’를 보면서 나는 한국 영화의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국제시장’을 여러 번 떠올렸다.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미국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한국인 부모는 고립된 지역에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정체성을 개척하려고 고군분투하는데 그들이 만나는 외부인들은 나사 빠진 광신자들처럼 그려진다. 이들의 농장 일을 돕는 이웃사람 폴은 종종 열렬하다 못해 광적인 어조로 예수님께 부르짖는데, 그 때마다 제이콥이 깜짝 놀라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폴이 크고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다. 미국 남부에 실제로 폴 같은 사람이 간혹 있고, 아칸소 같은 주나 한인 사회에서 교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일부 사실이고 해학적으로 묘사되었다고는 해도 ‘이 정신 나간 미국인들 좀 보라’는 메시지는 다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나리’를 보면서, 또 관람 후에 찬찬히 생각하면서 이 영화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미나리’는 퍽 다양한 측면을 다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했기에 한국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만했다. 이 영화는 양파와 같아서 분석하면 할수록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 비유를 연장하자면, 양파는 또한 눈물샘을 자극한다. ‘미나리’는 두 사람이 겪는 실존적인 의문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드라마다. 제이콥은 “미국 가면 서로를 구해주자고 했잖아.” 라고 모니카와 결혼하기 전에 나눈 대화를 씁쓸하게 되새긴다. 잘 만든 영화에서는 강렬하고 극적인 장면에 이어 경솔하고 해학적인 장면이 뒤따른다. ‘미나리’의 경우 신랄한 어조의 할머니와 장난기 많은 꼬마가 이를 주로 담당한다.

또한 부모와 자녀의 관점을 전환해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다. 많은 장면들이 어린 데이비드와 누나의 눈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매우 감동적이었다. 특히 나는 심하게 다투고 있던 부모에게 남매가 ‘싸우지 마세요’(Don‘t fight)라고 쓴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는 장면에서 감동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귀엽고 천진난만한 앨런 김, 염려하고 분노하는 한예리, 고군분투하는 스티븐 연,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자인 명배우 윤여정 등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들이 열연했다. 모든 배우들에게, 특히 감독에게 갈채를 보낸다.

에바 존 한국프랑스학교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