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기다려 보라고만 당국선 소송 걸라고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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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마비 환자 황미순(39)씨의 사연에는 국내 줄기세포 응급임상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장된 홍보와 연구자의 과욕, 환자의 과신과 엉성한 제도 등이 그것이다. 황씨가 인터넷에서 줄기세포 정보를 접한 것은 2002년. 성체 줄기세포를 투여받은 여성이 발가락 두 개를 움직인다는 외신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관심은 온통 줄기세포에 쏠렸다. "2003년 서울의 한 병원에 갔더니 줄기세포를 맞고 걷게 된 척수마비 환자가 있다더군요. 그 환자의 연락처는 가르쳐주지 않고…. 게다가 시술비로 1400만원을 요구해 포기했습니다." 2004년 그는 척수마비 환자로선 국내 최초로 한 생명과학 업체와 모 대학병원에서 주관하는 줄기세포 응급임상에 참여했다. 시술에 참여하기 위해 해당 응급임상을 승인해 달라는 민원을 청와대.식품의약품안전청(식의약청)에 열심히 제기했다. 시술 후 배꼽 밑으로 없던 감각이 느껴지고 엉덩이 쪽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꿈만 같던 호전 증상은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렸다.

기적을 바라며 재도전한 2차 시술 후에는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황씨는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도 병원과 업체 측은 '기다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할 뿐, 적절한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승인기관인 식의약청에도 알렸지만 "소송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현재 황씨의 부작용을 치료 중인 의사 J씨는 "시술로 인한 감염으로 염증이 생겨 뼈 일부가 녹아내렸고, 주변 근육은 조직검사용 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조직이 딱딱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이 조직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씨를 간호하느라 남편까지 집에 있게 되면서 경제적 형편이 더 어려워져 황씨는 후속 검사도 제때 못하고 있다.

줄기세포 시술을 맡았던 의사 K씨는 취재진에 일부 무리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황씨 상태로 봐 좋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웠는데 업체의 부탁 때문에 시술했어요. 제의를 뿌리치지 못한 게 후회스럽습니다." 황씨의 통증 치료와 관련, K씨는 "경과를 봐가며 치료하려 했지만 황씨가 '신뢰할 수 없다'며 병원을 옮겼다"고 했다. 세포 제공업체 대표 H씨는 "첫 번째 시술에선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응급임상에 참여하기 전 환자들은 대개 '부작용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쓴다. 식의약청의 관련 지침에 '의사의 책임 아래 실시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이 각서 때문에 부작용과 후유증은 대개 환자가 안게 된다. 황씨 남편은 "현행 줄기세포 응급임상 제도에선 병원.업체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며 "임상시험이 아니라 사실상 해부학 실험"이라고 비난했다.

◆ 줄기세포 임상 관련 제보를 받습니다 = 02-751-5677,

◆ 취재팀=김성탁.정효식, 박경훈(서강대 신방4).백년식(광운대 법학2)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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