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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환자들 ´죽을 맛´

중앙일보

입력

직장인 김모(35.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15일 당뇨 환자인 어머니를 위해 혈당측정기용 일회용 시험지(스트립지)를 사려고 동네 약국을 세 곳이나 돌아다녔지만 허탕 쳤다. 시험지가 없거나 다른 모델의 혈당측정기용 시험지만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시험지를 전혀 구할 수 없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알아봤더니 '시험지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파는 게 불법'이라고 말하더라"며 "혈당측정기와 채혈기는 인터넷이나 의료기기상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소모품인 시험지만 이렇게 사기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뇨 환자들이 스스로 혈당 관리를 하는 데 사용하는 혈당측정기의 시험지가 현행법상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진단용 시약으로 분류돼 있어 환자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약국들이 측정기 모델마다 다른 시험지를 제대로 갖춰놓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에 시판된 모델은 36가지였다. 당뇨병 환자 단체인 한국당뇨협회는 약 500만 명의 당뇨 환자 중 100만 명 정도가 측정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험지는 50장들이 한 통에 2만2000~2만5000원이다.

지금까지는 의료기기상이나 인터넷 판매상이 공공연하게 측정기 세트와 함께 시험지를 팔아왔다. 그러나 최근 경찰이 시험지를 판매한 의료기기상 200여 곳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적발하는 등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환자들이 시험지를 구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한국당뇨협회 김태명 총무이사는 "하루에 3~4회 이상 스스로 혈당을 측정해야 할 환자들도 많다"며 "최근 '시험지가 떨어졌는데 구할 수가 없다'는 문의전화가 하루에도 10여 통씩 걸려온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공급상인 아큐케어의 정선구 이사는 "불합리한 제도가 전국 1500여 개 의료기기 판매상까지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계 당국에 민원을 제기해 올 8월엔 국무조정실로부터 '혈당검사용 시험지를 일반의약품에서 제외하도록 9월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라는 회신까지 받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의약청 관계자는 "TF팀을 구성하기로 했지만 워낙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측이 "시험지는 유효기간이 짧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의약품 분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당뇨를 국가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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