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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누굴 투수로 쓸지는 감독 고유권한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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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야수 2명을 마운드에 올린 한화 수베로(왼쪽) 감독의 투수 운용이 최근 이슈가 됐다. [뉴스1]

야수 2명을 마운드에 올린 한화 수베로(왼쪽) 감독의 투수 운용이 최근 이슈가 됐다. [뉴스1]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10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8회까지 1-14로 뒤졌다. 선발투수가 7점, 불펜 추격조 세 명이 7점을 차례로 내줬다. 이미 전세는 두산 쪽으로 넘어간 상황. 앞서 던진 투수 셋은 모두 투구 수 40개를 넘겼고, 불펜에는 다음 경기에 투입할 필승조만 남아 있었다.

야수를 마운드에 세운 수베로 감독 #필승조 아낀 덕분에 다음날 이겨 #최선 다했는지 논란 있지만 #규칙과 스포츠 정신 지키면 존중

카를로스 수베로(49) 감독은 결단했다. 내야수 강경학을 9회 초 첫 투수로 내보냈다. 강경학은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안타 3개를 맞았고 추가로 4실점 했다. 계속된 2사 1·2루 위기에서 외야수 정진호가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정진호는 공 4개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워 이닝을 끝냈다. 한화는 1-18로 졌다.

수베로 감독은 한화가 창단 26년 만에 처음 영입한 외국인 사령탑이다.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잔뼈가 굵었고, 2016년부터 4년간 메이저리그(MLB)에서 코치로 일했다. 첫 시즌부터 다양한 경기 운영방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내야와 외야 포지션 경계를 없앤 시프트, 선발투수 두 명이 한 경기에 앞뒤로 출격하는 ‘탠덤’ 운용 등이 대표적이다.

패배가 거의 확실해진 경기 마지막 이닝에 야수를 투수로 투입한 이 장면도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MLB 경기에선 한쪽으로 크게 승부가 기울었을 때 가끔 볼 수 있는 작전이다. LA 다저스 포수 러셀 마틴도 2019년 8월 팀이 9-0으로 이긴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박수를 받았다. 감독이 이런 선택을 하는 목적은 단 하나. 불펜을 아끼기 위해서다.

모두가 환영하는 작전은 아니다. 이 경기를 중계한 해설위원 A는 격한 반감을 드러냈다. 해설 도중 “올스타전도 아닌 정규 시즌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장료 내고 이런 경기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안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수베로 감독은 태연했다. 그는 다음날(11일) “지금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내겐 평범한 일인데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다. 앞으로도 내 입장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 다른 이에게 어떤 놀라움으로 다가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의 발언을 전해 듣고는 “그렇다면 누군가 9회에 1-14 스코어를 뒤집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불펜을 아껴 라이언 카펜터가 나오는 다음 경기에 집중하면, 3연전을 2승으로 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결과는 정확히 수베로 감독 의도대로였다. 한화는 11일 두산을 꺾었다. 3-2 살얼음판 승부에서 전날 휴식한 필승조 김범수-강재민-정우람을 차례로 투입해 1점 리드를 지켰다. 한화가 이날 필승조를 내고 졌어도 수베로 감독의 10일의 선택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선수 기용과 투수 교체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수베로 감독은 불펜 소모를 줄여 11일 경기에서 이길 확률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감독의 역할과 의무에 충실했던 거다.

한화 구단도 수베로 감독의 야구관과 판단을 신뢰했다. 투수 출신 정민철 한화 단장은 “수베로 감독이 야구 규칙과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상식적인 운영이었다. 감독은 저마다 팀 운영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고, 구단은 그 방식을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프런트는 경기 운영과 관련해 절대 현장에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선수 기용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고유 권한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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