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 줄기세포 허브' 에 부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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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는 질병 치료의 새 장을 열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세포다. 줄기세포는 일반세포와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무한 자가증식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세포의 환경을 조절해 특정 기능을 하는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쥘 경우 질병 치료에 필요한 줄기세포의 수를 원하는 만큼 증폭시킬 수 있으며 또한 줄기세포를 치료에 필요한 단계로 분화시켜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세포나 기능을 대체 보완 재생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그 자체의 병소 지향성을 이용하여 치료 물질 전달체로 이용할 수도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황우석, 안규리 교수팀이 환자 맞춤형 체세포 핵 이식 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함으로써 세계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강자로 부상하였다. 맞춤형 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떼어 기증자의 난자에 삽입함으로써 환자 자신과 유전 정보가 동일하도록 만든 줄기세포며, 이를 이용하면 향후 면역 거부반응 없이 세포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큰 의미가 있다. 또 환자의 개체 특이성이 반영된 세포 배양 또는 조직 환경을 만들어 이를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응용할 수도 있다. 이런 엄청난 잠재력을 갖는 체세포 핵 이식 줄기세포의 확립 기술은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것으로 체세포 핵 이식 줄기세포에 관한 한 원천기술 보유국임을 전 세계 학자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어렵게 성취한 기술력의 우위를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잘 정비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전 서울대병원은 범세계적 줄기세포 연구 중앙기구인 '세계 줄기세포 허브' (World Stem Cell Hub)를 개소함으로써 전 세계 줄기세포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초의과학과 임상의학의 협력연구체제를 강화하며 세포 치료, 재생의학, 환자 맞춤형 신약 개발 등의 첨단 임상 연구를 주도하고 우리나라의 의생명과학 연구 능력과 기술력을 세계에 드높이는 기틀을 마련했다. 세계 줄기세포 허브의 또 하나 중요한 의미는 체세포 핵 이식 줄기세포 관련 세계적 표준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배아 줄기세포 및 성체 줄기세포의 표준까지 아우르는 역할의 확대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줄기세포 허브의 역할은 임상 적용을 위한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적은 수의 환자로부터 얻은 세포를 이용하여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시작 단계에 있다. 난치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여러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조바심이 들겠지만, 여러 해에 걸친 연구가 선행돼야 보편적 치료 방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기대치를 100% 이루는 성공적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자칫 성급하고 지나친 기대와 오해가 있을까 우려되며 주변의 조급한 요구들이 먼 길을 가야 할 연구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급한 마음으로 북새통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연구 진척 상황에 맞추어 전 세계인이 공유할 시간표를 만들고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국가적, 범세계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시기다. 실험실의 줄기세포가 환자 치료에 이용되기까지는 질환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 줄기세포 분화 연구,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 연구, 그리고 임상 시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산들을 넘기 위해 인적, 물적, 그리고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사회에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줄기세포의 윤리적 견해에 대해서도 보다 활발하고 건전하며 균형 잡힌 논의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왕규창 서울대 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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