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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칼럼] 조류독감과 불안 신드롬

중앙일보

입력

가축을 포함한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는 질병을 일반적으로 인축공통전염병(人畜共通傳染病)이라 부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축공통전염병으로는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창궐했던 페스트다. 페스트는 집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에게 옮기는 질병이다. 유럽인들에게 페스트를 옮긴 매개동물인 집쥐는 원래부터 유럽에 살고 있던 쥐가 아니다. 집쥐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서 15세기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서식영역을 확산시켜 나갔고, 면역성이 없던 유럽인들에게 집쥐의 페스트병원균이 기생하면서 발병하게 된 것이다.

집쥐의 유럽 공략의 뒷면에는 지역과 국가의 경제.문화.정치 교류가 있다. 집쥐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데 가장 성공한 동물이다. 당시 실크로드로 알려진 아시아와 유럽의 교역경로를 따라 상인들의 왕래에 편승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진출했고, 영국과 같은 섬나라에는 노르웨이의 바이킹 해적들의 해적선을 타고 진출했다. 영국에서는 집쥐를 일컬어 악명 높은 바이킹 해적국가인 노르웨이를 빗대어 영명으로 노르웨이쥐(Norway rat)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집쥐의 세계 정복은 유럽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다시 영국과 네덜란드.이탈리아.포르투갈.프랑스.스페인 등 유럽국가의 아프리카대륙.미주대륙으로의 신천지 대탐험과 식민지화에 동참하여 찬란한 대성공을 거뒀다. 현재 집쥐의 분포는 거의 전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극의 에스키모 원주민 부락은 물론이고, 남극 극지연구기지에도 살고 있다. 심지어 영하 40도를 웃도는 냉동 창고에서도 생존한다. 생존을 위한 동물들의 환경적응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가 너무나 많다.

최근 조류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는 '조류독감'에 의해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아직 발병 원인이 명확히 규명돼 있지 않으나, 가금인 닭과 오리 농장에서 발병하여 사람에게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철새인 야생 오리류로부터 전파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일부 언론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야생 오리와 기러기 등의 철새가 조류독감 병원균 전파의 주범인 것처럼 기정화한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일반인들 사이에서 철새는 다 죽여야 한다는 험악한 소리까지 들린다.

병원균도 생명체로서 지구 생명 역사 초기부터 존재해 왔다. 병원균이라고 해도 반드시 모든 사람과 동물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병원균은 숙주의 몸에서 기생하는 생명체다. 숙주를 죽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진화(共進化)을 이루어 왔다.

인간사회에서도 성별과 민족.지역에 따라 다양한 병원균이 존재한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갑자기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환경변화와 패스트푸드 등 현대 사람들의 먹거리 변화에 의한 체질이상, 항생제 남용, 닭과 오리 등 대규모 사육농장의 열악한 사육환경 등의 여러 조건이 사람에게 조류독감을 전파하고 발병하게끔 만든 주원인이다.

근본적 원인규명에 노력하지 않는 담당 국가기관과 섣부른 추측 기사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언론의 자세는 새로운 사회적 질병을 만들고 있다. 다름 아닌 신사회 신드롬(증후군)이란 정체 모를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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