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과 녹취가 ‘자기방어 수단’이 되어 버린 요즘.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30대 직장인 A씨는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직장내 괴롭힘 증거를 수집하려 소형 CC(폐쇄회로)TV를 설치했다가 붙잡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3차례 노동청 진정 무산…최후 수단 CCTV 몰카 설치
대형 생활용품판매점 본사에서 일하던 A(31)씨는 2019년 9월과 11월 서울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는다. 한 번은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였고 다른 한 번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제기한 진정이었다. 얼마 뒤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은 “사업주가 적절히 조사 및 조치했다”며 종결됐고, 성희롱 진정에 대해서는 위반 사항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됐다. 비슷한 시기 A씨는 여성가족부에도 성희롱 등을 이유로 진정을 넣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A씨는 사무실 책상 위에 폭 10cm, 높이 12cm 정도의 소형 CCTV를 증거수집용 몰카로 활용했다. 보통 가정에서 어린 아이나 반려견들을 살펴볼 때 쓰는 기기였다. A씨는 카메라를 종이상자에 넣고 렌즈 부분만 구멍을 내 사무실이 찍히도록 했다.
A씨는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자동으로 카메라가 작동되도록 설정해뒀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다른 팀 직원이 책상 위 카메라를 발견하며 문제가 됐고, A씨는 법정에 서게 됐다.
녹음되는지 몰랐고, 실제 녹음도 되지 않았다?
재판에서 A씨는 CCTV 기능에 녹음기능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또 CCTV 녹화 영상을 재생해도 ‘웅웅’거리는 소음이 심해 타인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가 녹음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실제 녹음된 화면에는 일부 직원들의 대화 장면이 촬영됐다. 하지만 주변 소음이 심해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는 식별할 수 없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CCTV의 제품 설명서에는 제품 외관에 ‘스피커’‘마이크’ 부분이 분명히 표시되어있었다. 또 A씨 주장에 따르더라도 성희롱 발언의 증거를 수집하려면 음성 녹취기능이 필요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토대로 A씨가 녹음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녹화된 화면에서 대화 내용을 식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결과적으로 식별이 불가능해 듣지 못했을 뿐 녹음한 행위는 맞으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미수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증거 수집' 위한 정당행위 주장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A씨는 “뒷자리 남자직원이 쳐다보며 신음소리를 내거나 시시덕거리고, 일부러 신체를 스치거나 성희롱 발언을 해 여성가족부 등에 신고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종결되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설치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법정에서는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를 들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CCTV를 설치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등의 증거를 수집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은 인정된다”면서도 “증거수집 목적이 있어도 현행법을 위반해 타인 몰래 타인의 대화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그 대화를 무작위로 녹음하는 방법이 상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항소심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는 “피고인이 사적인 이익을 바라거나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CCTV를 설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몰래 CCTV를 설치해 타인 간 사적 대화를 녹음한 것은 타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범죄이므로 죄책이 가볍지 않다”라고 항소를 기각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