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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고개 숙인 남자´와 테스토스테론

중앙일보

입력

남성들은 결혼 후에도 왜 끊임없이 다른 여성 주변을 맴도는가. 인류생태학자들의 이론은 이런 질문에 변명할 구실을 준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종의 경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을 정자의 전쟁에 내보내는 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 논문이 이를 증명한다.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검은 눈 방울새 수컷에게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했더니 외도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는 수도 현저히 많아졌다.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높은 수컷은 짝이 아닌 암컷과 교미를 통해 평균 1.21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이는 정상 수컷이 다른 암컷과 사이에서 낳은 0.36마리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테스토스테론은 투쟁의 호르몬이다. 정복욕을 자극하고, 공격성을 드러낸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뼈의 발달과 지방 감소 등 남성다운 모습을 만들어준다. 이 호르몬 수치가 높은 남성들은 각이 진 턱과 튼튼한 골격으로 터프한 인상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치열한 경쟁을 할 때 우리 몸에서 급상승한다. 운동 경기가 진행될 때 양팀 모두 남성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 그러나 게임이 끝나면 호르몬 분비는 판이하게 갈린다. 승리 팀원의 호르몬 수치는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지만 패배한 팀원들의 호르몬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은 체스 . 퀴즈 등 두뇌를 사용하는 게임에서도 나타난다. 승리는 곧바로 성욕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DNA를 확산시킬 기회를 잡는 것이다.

여성들이 터프한 남성보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남성을 선호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야성적인 남성과 여성스런 남성 얼굴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여성들에게 좋아하는 유형을 선택한 결과 대부분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터프한 남성의 외도 경향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해석이다.

남성을 남성답게 만드는 테스토스테론은 '아침형 호르몬'이다. 하루를 기준으로 오전 8시쯤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취침 직전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절반 수준이다. 당연히 발기력도 새벽에 강하다. 성의학자들이 '모닝 섹스'를 권하는 이유다.

불행(?)하게도 테스토스테론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진다. 40대 이후 1.2%씩 줄어 70대에선 30대의 절반이 된다. 최근 국내의 한 대학병원은 20~40세 한국 남성의 남성호르몬 수치가 서양인의 79%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갱년기 증상이 서양인보다 일찍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남성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면 성욕이 감퇴하고, 성격도 공격형에서 수비형으로 바뀐다. 지방량이 증가하고 기억력 감퇴, 우울증, 근력 감소 등의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도 갱년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해 남성다움을 되찾으려는 노력도 눈물겹다. 19세기만 해도 동물의 고환에서 물질을 뽑아 인체에 투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약에서 주사제, 피부에 바르는 겔 형태 등 다양한 제형으로 투여방법이 개선되고 있다. 2002년 14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시장규모는 지난해 40억원 정도로 늘었다.

고령화 시대에 테스토스테론이 떨어진 남성들의 '거세'된 모습이 늘고 있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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