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부모는'기러기'라도 외국 가는 게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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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경제적으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하지만 서울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면서 아내와 큰딸이 '삶이 아닌 삶'을 살아야 했던 걸 생각하면 참을 만합니다."

변리사 최모(42)씨는 2년 전 자폐 증상이 있는 큰딸(12)을 아내와 함께 호주로 보냈다. 그는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큰딸이 호주에서 만족스럽게 사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최씨가 특히 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은 발달장애인도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다니는 특수 학교의 체육 프로그램도 좋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장애인 스포츠 시설도 많다. 장애인 스포츠 대회도 다양한 규모로 자주 열린다.

최씨의 딸은 수영의 경우 학교에서 주 2회, 민간 단체에서 주 2회, 또 개인레슨을 받으며 주 1회하고 있다. 볼링.체조.육상도 주 1회하고 있다. 또 공원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긴다고 한다.

직장인 김모(44)씨도 6년 전 두 아들과 아내를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다. 특수교사조차 없이 허울뿐인 통합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자폐증이 있는 둘째 아들과 아내가 하루 종일 부대끼는 모습을 보다 못해 내린 결단이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일반학교에서도 특수교사 4~5명이 아이 특성에 맞춰 다양한 수업을 해주고 이제 만 16세가 됐는데 벌써 직업까지 고려해준다고 했다.

"한국에선 부모가 온갖 돈을 쏟아부으며 특수교육을 잘 시켜놓아도 정작 성인이 되면 집이나 시설 외엔 갈 곳이 없잖아요. 그런데 지난 설 연휴 때 미국에 갔더니 학교 선생님과 지역 특수교육 담당자가 저희 부부와 아이를 불러 한시간 이상 진로상담을 해주더군요."

김씨는 그곳 특수교육 담당자가 아들이 피아노를 잘 친다는 것을 알고 졸업 후 교회 반주하는 일 등을 알아봐 준다고 한 데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특수교육과의 박지연 교수는 "미국은 장애인도 20세가 되면 자립할 수 있도록 생활 및 직업 훈련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며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 역시 스포츠 등 자기생활을 즐길 수 있고,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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