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장애에도 물 속 풍덩…차량 속 일가족 3명 살린 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6면

지난 21일 김해 봉곡천 옆 농수로에 승용차가 뒤집힌 채 빠져 있다. [사진 경남경찰청]

지난 21일 김해 봉곡천 옆 농수로에 승용차가 뒤집힌 채 빠져 있다. [사진 경남경찰청]

지난 21일 낮 12시 29분쯤 김해시 화목동 봉곡천 옆 둑에서 낚시하던 김기문(57)씨는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김씨의 눈에 A씨(50대 초반) 가족 3명이 탄 SUV 승용차 한 대가 봉곡천 옆 농로에서 미끄러져 물속으로 빠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김해 봉곡천서 낚시하던 김기문씨 #농로 옆 물속으로 빠지는 차 발견 #사고로 장애 4급, 하반신 불편에도 #바로 뛰어들어 차문 열고 생명 구해

A씨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에 길을 양보하기 위해 농로 가장자리로 차를 붙이다 옆으로 굴러떨어지면서 3m 아래 농수로(수심 1m 50㎝)로 빠진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물은 깊지 않았지만 차가 뒤집히면서 수압으로 인해 A씨 일행은 차 문을 열지 못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김씨는 점퍼만 벗은 채 차가 뒤집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신장이 1m 60㎝인 김씨가 물에 들어가자 가슴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다. 김씨는 운전석 쪽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손을 휘저었다. 물은 차량이 빠지면서 흙탕물이 되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잠시 뒤 김씨의 손에 사람의 몸이 잡혔다. 힘껏 당기니 A씨가 숨을 몰아쉬며 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기문씨

김기문씨

A씨로부터 “2명이 더 타고 있다”는 말을 들은 김씨는 곧바로 뒷좌석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또다시 손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머리카락이 손에 잡혔다. A씨의 부인(50대 초반)이었다. A씨 부인은 구조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곧바로 김씨에게 “아들(20대)도 차에 타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반대편 뒷좌석 쪽으로 가는 동안 A씨 부인이 차 안에 있던 아들을 구해내면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약 2~3분 사이에 이뤄졌다. 이들 가족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구조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김씨가 물에 곧바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A씨 가족은 큰 참변을 겪을 뻔했다. 김씨는 지난 2014년 다니던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하반신 쪽에 장애가 있었다. 평소 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장애 4급 판정을 받아 큰 힘을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김씨는 A씨 차량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봉곡천은 김씨가 가끔 낚시를 오는 곳으로 그동안 다른 곳에서 지인들과 낚시를 했다. 사고 전날 비가 오면서 오랜만에 봉곡천을 찾았다가 A씨 가족을 구하는 큰일을 하게 된 것이다. A씨 가족은 구조 직후 김씨에게 여러 차례 감사의 말을 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가족을 구한 김씨는 22일 중앙일보에 “차가운 날씨에 물속에 뛰어들어 가벼운 몸살 기운이 있지만, 누군가의 가족을 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도 몸이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물에 빠진 차량을 보니 ‘일단 사람을 구해야 겠다’는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할 경황이 없었다”며 “저도 사고 이후 오래 일을 쉬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용기를 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24일 김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