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신뢰 잃어 … 책임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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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10일 기자회견은 윤태영 대변인의 오전 브리핑 도중 전격적으로 통보됐다. 예고 없이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평소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가던 盧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한때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盧대통령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20년 가까이 나를 보좌해온 최도술씨가 잘못이 있다면 입이 열개라도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盧대통령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盧대통령 스스로 재신임을 언급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회견 후 배경을 묻는 질문에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음'하는 신음 소리만 연발하다 "답할 경황이 아니다"며 말문을 닫았다. 다음은 盧대통령과의 일문일답.

-결심은 언제 했나. 재신임을 받을 구체적인 방법은.

"인도네시아에서 崔전비서관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오래 생각하고 결심했다. 모호하게 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공론에 부치자고 한 게 아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방법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적절한 법적 절차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으므로 공론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최도술씨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나.

"검찰이 이 수사를 결심했을 때는 철저히 끝까지 진상을 밝혀낼 각오를 갖고 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신뢰를 받아야 하므로 수사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내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재신임 이유로 그동안 축적된 국민의 불신을 거론했는데.

"(잠시 생각하다)대통령이 신뢰를, 국민의 단단한 신뢰를 받지 않으면 국정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렵다. 어떻든 그동안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그런 상태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수사 결과가 어떻든 국민이 나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고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밑천일 뿐이다. 이 상태로 어정쩡하게 1년, 2년 국정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가든 부든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게 국가를 위해 필요하고, 나 스스로도 이 상태로 국정을 운영하기 어렵다. 도덕적 신뢰에 대해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자부심이 훼손된 상태에서 어떻게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나. 언론 환경도 나쁘고 국회 환경도 나쁘고 (내뱉듯이)솔직히 지역적 민심의 환경도 나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자부심이다. 최도술씨 사건은 그런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힘있게 추진해 나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崔씨의 개인 비리로 드러나더라도 재신임을 받나.

"수사 결과가 어느 쪽이든 국민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게 중요하다. 그만한 일로 무슨 재신임이냐고 할지 모르나 국민은 그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적어도 이 같은 의혹이 있더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사면받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무모하거나 경솔한 선택이 아니라 달라진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어 盧대통령은 "재임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안정 총리'가 더 책임있게 보좌할 것이므로 국정 혼란 걱정은 너무 하지 말아달라"면서 회견장을 떠났다.

김성탁 기자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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