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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 끊길뻔한 ‘1000원식당’…주인장 웃게 만든 ‘쌀 100가마’

중앙일보

입력

“오늘 쌀 100가마 받았으니 오시는 손님들 밥 많이 먹고 가시라 했죠.”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주인 김윤경씨가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주머니 걱정없이 단돈 1000원이면 누구나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후원이 부쩍 줄어들면서 힘겨워 하던 김씨에게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에 전해진 쌀과 후원금

“3만원씩 보내던 후원도 그쳐…”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에서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1000원 밥상을 팔고 있는 '해뜨는 식당' 주인 김윤경씨가 미소짓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에서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1000원 밥상을 팔고 있는 '해뜨는 식당' 주인 김윤경씨가 미소짓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씨의 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단 한 가지, 공깃밥 한 그릇과 된장국, 3가지 나물 반찬이다. 일반 식당은 공깃밥 한 그릇에 1000원을 받는 데 이곳만큼은 김씨의 어머니 고(故) 김선자씨가 2010년 문을 연 뒤로 줄곧 밥값 1000원을 고수하고 있다.

이곳은 해뜨는 식당이란 상호명보다 ‘1000원 식당’이라 불리며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잇지 못하는 독거노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돼 온 곳이다. 턱없이 싼 밥값 때문에 손님을 받을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어 후원을 받아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김씨는 “될 때마다 3만원씩 후원금을 보내주던 분도 일자리를 잃어 (후원금을) 못 보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며 “다들 어려워지니까 도움을 주기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1000원 식당 이어달라” 유언 잇는 딸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 주인 김윤경씨가 공기삽과 된장국, 반찬이 담긴 1000원 밥상을 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 주인 김윤경씨가 공기삽과 된장국, 반찬이 담긴 1000원 밥상을 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가족들조차 김씨가 힘들게 1000원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는 “언제 그만둘 거냐”는 걱정을 전한다. 하지만 김씨는 어머니가 2015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계속 식당을 운영해달라”는 유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요새는 김씨가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받는 월급도 식당에 쏟아부으며 버티는 상황이지만, 가게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김씨는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식당이 열기만을 기다리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어떤 어르신들은 ‘자네가 있어 내가 밥을 먹지’라며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최근 건강이 나빠져 가끔 식당을 쉴 땐, 이곳을 찾을 손님들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김씨는 “사람을 쓰면 하루도 안 쉴 수 있지만, 1000원에 밥을 팔면서는 불가능하다”며 “그래도 관심 갖는 분들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전해진 온정의 손길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1000원 밥집인 '해뜨는 식당' 앞에서 쌀 100포대와 200만원 등 후원물품 전달식이 열렸다. 사진 광주광역시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1000원 밥집인 '해뜨는 식당' 앞에서 쌀 100포대와 200만원 등 후원물품 전달식이 열렸다. 사진 광주광역시

이날 해뜨는 식당 앞에선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아너소사이어티 등에서 보내온 쌀 100포(20㎏) 등 후원물품 전달식이 열렸다. 광주 동구청 6급 이상 여성공직자 모임인 ‘장미회’에서도 성금 200만원을 전했다.

대인시장 상인회도 마음을 보탰다. 상인회가 50만원 상당의 김치와 무 등 식재료를, 새마을금고 동구연합회는 매월 3~5포대의 쌀을 전하기로 했다. 관할 구청인 광주 동구청은 해뜨는 식당에 전기·도시가스 요금 할인 방안과 자원봉사자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광주시도 해뜨는 식당의 운영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에 온정의 손길을 전한 사람들과 후원 물품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에 온정의 손길을 전한 사람들과 후원 물품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동구청 관계자는 “해뜨는 식당이 워낙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다보니 후원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 맞춘 도움을 고민하다가 장미회에서 모은 회비 200만원을 전하기로 했고 구청 차원에서도 별도 지원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해뜨는 식당은 자그마한 후원도 잊지 않는다. 식당 한켠엔 참기름 3병, 귤 1박스, 고기, 달걀 등 온정의 손길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적혀 있다.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에 후원물품을 전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 해뜨는 식당에 후원물품을 전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윤경씨는 “십시일반으로 전해진 나눔으로 1000원 밥상을 내놓는 곳이 우리 식당”이라며 “식용유 한 통처럼 작은 온정의 손길이라도 정말 감사히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원 밥집이 어르신만 오는 곳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이 대인시장에 들릴 때마다 맛있는 식사 한끼를 하고 가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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