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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스타 총출동한 바둑리그…오늘 포스트시즌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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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셀트리온, 한국물가정보, 포스코케미칼, 수려한합천. 3개의 기업 팀과 1개의 지방자치단체 팀이 2020-2021 KB한국바둑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정규시즌 1위를 한 셀트리온엔 신진서가 있고 2위를 한 한국물가정보엔 신민준이 있다. 한국바둑 르네상스를 이끄는 ‘양신’의 힘이 느껴진다. 36세의 원성진은 기어이 14전 14승이란 전승 기록을 썼다. 셀트리온을 1위로 밀어 올린 원동력이 됐다.

소속·선수선발·몸값 등 숙제 여전 #팬들의 환호는 팀 아닌 개인 향해

오늘(17일) 변상일의 포스코케미칼과 박정환의 수려한합천이 준플레이오프를 시작한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26~28일엔 우승팀을 가리는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한국바둑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모두 투입된다. 결전을 앞둔 각 팀의 감독과 선수들 사이엔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나 뭔가 빠진 듯 허전하고 아쉽다. 팬들의 열정과 환호가 특정 선수로만 향할 뿐 팀으로 향하지 않는다.

바둑리그엔 풀기 힘든 숙제들이 많이 있다. 먼저 소속의 문제. 미국에서 뛰던 야구선수 추신수는 계약을 통해 SSG 랜더스 팀 소속이 됐다. 한데 신진서는 셀트리온 소속이지만 어디까지 소속일까. 그에겐 더 크고 귀중한 개인전 무대가 있고 한국리그 말고 중국리그에서도 활동한다.

팀의 선수는 누가 뽑나. 팀이 전권을 가져야 할까, 시합을 통해 선수가 될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야 할까. 바둑리그는 이번 시즌부터 예선전을 부활시켰다.

선수 개개인의 몸값 문제도 있다. 중국리그는 개별 계약을 하지만 한국리그는 누구나 평등하다. 바둑리그 한 판의 대국료는 승자 320~360만원, 패자 60~70만원. (과거 이세돌 9단은 이같은 균일한 대우에 반발해 리그 참가를 거부했다가 휴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조기 은퇴의 먼 동기가 된다)

용병, 속기 문제, 선수·해설자·감독의 구분이 애매한 한국바둑만의 특별한 사정도 있다. 자잘한 실타래가 동서남북으로 얽혀있어 어느 것도 일도양단하기 힘들다. 중국리그는 1999년, 한국리그는 2004년 시작됐다. 중국은 땅이 넓어 지역 연고가 확실하지만 우리는 그게 어렵다. 팀의 간판선수도 자꾸 이동하고 그래서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모든 게 ‘임시’ 같은 느낌을 준다. 뭔가 더 나은 것을 향한 도약을 기다리며 임시로 견디는 느낌을 준다. 원성진의 전승, 무명 이창석의 부상 같은 놀라운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바둑 동네의 반향은 터무니없이 약해 신진서-커제 대결이 바둑의 전부냐 하는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한때 유창혁 9단 등이 ‘동북아리그’를 논의했었다. 세계 1억명의 바둑팬 대부분은 동북아에 있다. 한·중·일 3국이 함께 참여하는 리그. 이 리그는 분명 소속감도 최고이고 팬들의 응원도 분명하고 그래서 잔치는 화려하고 바둑의 인기는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한·중·일 바둑은 한·중·일 정치만큼이나 복잡하다. 일본은 실력이 약하니 못 들은 척 하고 중국은 “중국리그부터”라며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한다. 한국만이 적극적일 뿐이다. 한국은 한 번도 대결을 피한 적이 없다.

사실 동북아리그는 너무 복잡하고 힘든 현실을 뒤로 한 채 구름 타고 훨훨 날아가는 것일 수 있다. 일종의 도피나 판타지라고 해도 절반은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꿈이 실현되기를 열망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신진서의 얘기를 들어본다. “2013년부터 바둑리그에 참가했는데 그때만 해도 내 대국의 전부였다. 바둑리그는 기사들에게 항상 감사한 기전이다.” 신민준도 “어릴 때부터 실력향상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바둑리그를 최고의 대회라 말한다.

이들에게 바둑리그는 팬 서비스 같은 대회지만 신인들, 중견들에게 바둑리그는 좋은 무대를 넘어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게 현실이다. KB바둑리그엔 선수 64명, 감독 8명 등 총 72명의 프로기사가 참여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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