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4500원 아끼려 아파도 참는 서민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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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주부 김정희(33)씨. 올 들어 애가 한두 번 감기에 걸렸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대신 약국에서 사놓은 종합감기약으로 때웠다. 병원에 한번 가면 적어도 4500원이 드는데 이를 아끼기 위해서다. 김씨는 "병원에 가더라도 사나흘치 이상을 처방해 달라고 해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고 말했다.

아파도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다-. 병원을 찾는 발길이 크게 줄고 있다. 김씨처럼 감기에 걸려도 웬만하면 참는다. 방학 때마다 성형외과나 치과는 성형수술이나 치열교정을 하는 학생들로 붐볐으나 올해는 특수가 사라졌다. 의료계는 불황 탓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 이후 호황을 누렸던 동네 의원들의 총진료비 수입이 처음으로 감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1일 발표한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올 1~6월 감기환자 진료건수는 4만170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3% 줄었다. 또 감기 진료비는 8.7% 줄었다. 올해처럼 이렇게 큰 폭으로 줄어든 경우는 별로 없었다. 지난해 상반기는 2002년에 비해 감기환자 진료건수가 6.7% 늘어났다.

성형외과나 피부과.안과.치과 등 보험이 안 되는 진료가 많은 병.의원에는 환자들이 더 안 간다. 성형수술이나 피부관리.라식수술.치열교정 등은 당장 안 해도 된다고 보는 것이다.

치과의사협회 장영준 이사는 "방학 때 치열교정을 하려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되레 지난해보다 3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환자가 줄다보니 동네 의원의 진료비 수입이 줄고 이를 견디지 못하는 곳은 문을 닫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동네 의원 총진료비는 2001년 24.8%, 2002년 2% 증가했는데 지난해는 처음으로 1.5%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에 감기환자가 늘긴 했지만 하반기에 감소했고 감기환자 외 다른 환자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지난해 전체 진료비도 줄어든 것이다. 경남에서 3년째 의원을 운영하던 최모(37.여)씨는 지난해 9월 1년 내내 쌓인 적자를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 남은 것은 1억원의 부채였다. 지금은 서울 강동구의 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로 취직해 있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국광식 총무이사는 "회원 750명 중 지난해 40명이 문을 닫았으며 이 중 17명은 연락이 안되고 5명은 실직상태며 일부는 월급쟁이로 취직했다"고 말했다.

특히 카드 결제가 많은 성형외과의 경우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것도 부담이다. 성형외과 환자 가운데 수술비를 카드로 내는 사람의 비중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런데 '카드 대란'이후 카드사들이 사용한도를 제한하는 통에 젊은 직장 여성들이 고가 수술비를 카드로 결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파도 참다보니 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의사 윤모씨는 "감기를 오래 두다보니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악화된 경우도 있다"며 "밤에 다리를 다쳐도 응급실에 가지 않다가 다음날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싼 외래환자로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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