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준비하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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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선글라스'를 ‘라이방’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6.25 전쟁 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안경을 ‘라이방’이라고 불렀는데(사실 이 단어는 선글라스가 나오는 어떤 브랜드를 잘못 발음해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시절에는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바뀌면서 최근 선글라스는 현대인의 필수품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선글라스 착용에 많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얼마 전 30대 중반의 한 여성이 병원을 찾아왔다. 생활설계사로 외부근무가 많다는 이 환자는 평소 눈이 많이 피로하고 안구건조증이 매우 심했다. 그래서 “외출시 햇볕이 심할 때는 가능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이 환자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젊은 아이들도 아니고 선글라스를 어떻게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볼 때 선글라스는 굳이 멋이 아니라 눈 건강을 위해 반드시 착용하는 것이 좋다.

태양광선에는 우리 눈과 피부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영역의 광선이 있는데 대기를 거치면서 일부는 흡수되지만, 일부는 지상에까지 유입된다. 특히 이중에서도 자외선 UV-A를 장기간 쏘이게 되면 각막뿐만 아니라 눈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 백내장(수정체 이상)이나 황반변성(망막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단시간 자외선을 받았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5~10년 지속되었을 때는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실제로 햇빛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백내장 발병률은 일반인보다 3배정도 높으며, 백내장 환자 20% 정도는 자외선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굳이 백내장이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강한 햇빛을 받고 일하는 노인들 가운데 눈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라식라섹백내장 등 수술을 받은 직후라면 6개월 이상 자외선 차단은 필수적이다.

백내장뿐만 아니라 황반변성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자외선 UV-A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질환은 황반변성이다. 물론 황반변성의 주요원인은 고도근시, 식단의 변화,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외선이다.

황반은 망막의 가장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데, 색깔과 사물을 구별하는 시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황반변성이 시작되면 물체가 일그러져 보이고 초점 맞추기가 어려우며 글자체나 직선이 흔들리고 굽어보인다. 심하면 단어를 읽을 때 글자 공백이 보이거나 그림을 볼 때 어느 부분이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발생초기 자각증상이 없어 위험하다.

한편 순간적으로 과도하게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때는 가벼운 눈 화상인 광각막염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보호경을 쓰지 않고 용접을 하거나 오랜 시간 뜨거운 햇빛이나 강한 조명에 노출되었을 때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햇볕이 강한 날 장시간 야외에 있거나 여름철 해수욕을 할 때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선글라스가 좋은 선글라스일까? 이는 여름철이 다가올 때마다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기도 한데, 정확히 말해 좋은 선글라스는 ‘자외선 차단 코팅이 되어 있어 UVC 광선을 근본적으로 차단시켜주는 것’이다. 개중에는 안경알에 색상만 들어있으면 자외선 차단이 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어느 정도의 자외선 차단은 있으나 자외선 차단코팅이 되어 있지 않으면 100% 차단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두워진 시야에 의해 확대된 동공으로 더 많은 자외선이 유입되어 더 해로운 경우를 맞게 되므로 반드시 자외선 차단코팅이 되어 있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빛의 색상에 따라 초점이 망막에 맺히는 차이를 극소화해야 하고, 청색빛의 산란을 차단할 수 있는 렌즈가 좋은데, 너무 진한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따라서 선글라스를 쓴 사람의 눈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색상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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