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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파장 커진 ‘학폭’ 논란, 프로야구로 불똥 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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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프로배구에서 시작한 학폭 논란이 프로야구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프로배구에서 시작한 학폭 논란이 프로야구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프로배구를 뜨겁게 달군 ‘학폭(학교폭력)’ 의 파문이 프로야구로 번지는 모양새다. 한화 이글스 소속 A 선수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네티즌 B씨가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폭로 글을 올렸다. A 선수의 초등학교 졸업사진과 실명을 공개했고, 일부 피해 사례를 나열했다. “청소 도구함에 나를 가둔 채 협박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었지만, B 씨는 얼마 뒤 “어린 시절 기억이라 그 사건 때 A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글을 수정했다. 다만 “평소 나를 괴롭히던 무리 중에 A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적었다.

인터넷에 “당했다” 폭로 잇따라 #가해자 엄벌도 중요하지만 #사실관계 꼼꼼히 확인해야

‘학폭’은 최근 체육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이슈다. 여자 프로배구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이상 25·흥국생명)은 과거 함께 운동했던 피해자의 학폭 폭로로 중징계(무기한 출전 정지)를 받았다. 이들은 앞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남자 프로배구 송명근(28)과 심경섭(30·이상 OK금융그룹)도 같은 이유로 남은 시즌 출장을 포기했다.

선수 사이의 폭력만 문제가 된 게 아니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팀에서 박철우를 구타했던 사건을 다시 언급했다가 피해자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후에도 폭력적 성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 이 감독은 스스로 잔여 시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스타급 배구인들이 연루된 일만 해도 이 정도이니, 얼마나 더 많은 선수가 학폭과 체벌 속에 고통받으며 운동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력’에 대한 구단들의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거다. 과거엔 “다들 맞으면서 운동했다” “팀 기강을 잡기 위해 꼭 필요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요즘은 “폭력은 어떤 핑계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일단 팬들이 ‘때리는 선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학폭 폭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마다 “징계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다만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올라오는 폭로 글의 진위를 꼼꼼히 확인하는 거다. 가해자가 스스로 학폭 사실을 인정했거나, 명백한 증거 혹은 증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앞서 프로배구의 학폭 폭로가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이미 애꿎은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돼 마음고생을 했다. 학폭의 위험성을 일깨우려다가 또다른 ‘억울한 희생자’를 만드는 부작용은 피해야 한다.

A 선수와 관련한 학폭 논란이 불거지자 프로야구 한화 구단은 냉정하게 접근했다. 한화는 19일 밤 10시쯤 B 씨의 주장을 확인한 뒤 곧바로 A 선수를 불러 면담했다. A 선수는 B 씨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누군지 전혀 모르는 분이다. (폭로 글에 언급한 일들도) 전혀 기억에 없다”고 부인했다. A 선수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기생 동료 C 선수도 “나 역시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다. A와는 야구부에서 쉬는 시간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는데 누군가를 괴롭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화는 20일 오전엔 단장을 비롯한 유관 부서 팀장과 실무자들을 비상 소집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장백 운영팀장이 B씨에게 직접 연락해 자세한 상황을 문의했다. 이어 A 선수의 학창시절 담임 교사, B씨가 직접 “과거 일을 증언해줄 수 있다”고 지목한 지인 등과 두루 통화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한화 관계자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학폭위 개최 기록이 없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춰볼 때, 안타깝지만 구단의 권한 범위 내에서는 더 이상 사실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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