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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5분에 1명 자살한다

중앙일보

입력

자살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안상영 부산시장.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등 유명인들은 물론 최근 모텔 집단자살 등 일반인의 자살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82년 10만명당 9.4명이었던 자살 사망자 숫자가 2002년엔 19.2명으로 배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속도다. 자살 예방을 위해 전문가들이 발벗고 나섰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범국민생명존중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체계적 교육과 홍보를 통해 자살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사무총장으로 이번 모임의 결성을 주도한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장 이홍식 교수를 만나봤다.

-자살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요.

"우리나라에서만 현재 5분에 한명씩 자살을 시도하며 45분에 한명씩 자살로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자살 사망자만 해마다 1만여명이나 됩니다. 우리 국민 124명 중 1명이 가족 중에 자살자가 있는 자살피해 가족입니다. 자살이 많은 국가로 유명한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도 자살 사망률은 우리의 절반 수준입니다."


◇ 끈끈한 가족애가 자살 막아

-자살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살은 우울증 등 내적 요인과 인간 소외와 경제불황 등 외적 요인이 모두 관여합니다. 내적 요인이 기름이라면 외적 요인은 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정신질환인데 어느날 갑자기 늘어날 리 만무하지요. 결국 최근 자살 급증은 자살을 부추기는 외적 요인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자살 급증을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되고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자살을 부추기는 외적 요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글쎄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는 것 아닐까요. 나는 가족 간 끈끈한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전엔 못 살아도 서로 부대끼며 느낄 수 있었던 가족 간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 가족은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성된 혈연집단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가족 구성원 간 역할만 강조되지 대화는 없어요. 특히 요즘 아이들이 1가족 1자녀 낳기로 형제간 우애를 못 느끼는 것은 비극이에요. 또래 집단으로서 형제가 주는 심리적 안정은 부모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전 그래서 병원 레지던트들에게 영화'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라고 권합니다. 자살 시도자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선 의사도 형제간 우애를 실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의 잘못도 있다는 비판도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자살 관련 언론보도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자살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부추기면 안 되지요.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합니다. 괴테가 권총자살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쓴 뒤 18세기 유럽에서 자살이 급증하면서 붙은 이름이죠. 한국외국어대 사회학과 허태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유명인사의 자살보도가 있게 되면 자살률이 평소의 14.3배나 된다고 합니다. 자살을 흥미 위주로 보도하면 안 되며 자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금물입니다."

◇ 죽고 싶다는 말은 위험 신호

-자살과 관련된 일반인의 편견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자살할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자는 자살 직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살을 고백합니다. 누구든 '죽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면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상황임을 인식하고 의사에게 자문해야 합니다. 둘째 자살자는 꼭 죽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한 사람이란 편견입니다. 하지만 자살자는 대부분 의지가 약하고 우유부단합니다. 자살 직전까지 망설입니다. 목을 매는 그 순간까지도 내심 도와줄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지요."

-자살의 징후가 있을까요.

"주위와 접촉을 끊고 우울해지며 말수나 식욕이 줄어든 경우, 주위 사람에게 자살 고백을 하거나 갑자기 여행을 떠나거나 성직자를 찾는 경우가 자살 징후입니다. 대개 사계절 가운데 봄이 가장 위험하며, 월요일에 자살이 가장 많습니다. 이번 겨울까지 또는 주말까지 고민이 해결되겠지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범국민생명존중운동본부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캠페인과 강의 등 국민 계몽과 교육에 주력하겠습니다. 종파를 초월한 종교지도자들과 교육자.정신과 의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해 소외된 계층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생각입니다. 자살 충동을 느낄 때 응급 상담을 할 수 있는 핫라인도 개설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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