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치료법 확 바꿀 줄기세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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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학술잡지인 사이언스가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을 초빙해 기자회견과 함께 강연을 하기로 한 곳은 미국 시애틀 중심가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다. 하루 방값만 3백달러나 되는 최고급 호텔이다. 수백명의 외신기자와 전미과학자협회를 비롯한 저명한 학계 인사들의 예우를 고려한 장소였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황교수를 비롯해 이번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도미한 국내 연구진 4명은 이곳을 마다했다. 이들은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30마일이나 떨어진 외곽지대의 평범한 숙박시설에 일주일 내내 머물렀다.

이곳의 하루 방값은 49달러. 호텔이라기보다 방에 주방을 갖춘 콘도식 대중 숙박시설이었다. 연구비도 아낄 겸 인근에 위치한 연구시설을 활용해 미국 체류기간에도 실험 등 연구를 강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뒤흔든 이번 업적도 이처럼 열악한 환경을 마다하고 헌신적으로 연구에 매달린 결과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인간 등 영장류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종래 미국 피츠버그대의 연구결과를 뒤집는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어 더욱 통쾌하다. 오죽하면 복제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피츠버그대 제럴드 새턴 교수조차 '기절할 만한 결과'라고 극찬했을까.

본지의 보도 이후 많은 독자는 획기적인 연구란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문의해 오고 있다. 그동안 줄기세포 관련 보도가 숱하게 있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줄기세포의 뜻부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자. 줄기세포란 구체적으로 열매나 꽃을 맺기 전 단계인 줄기에 해당하는 세포를 말한다.

물론 뿌리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이뤄진 수정란이란 한개의 세포다. 수정란은 '2→4→8개'식으로 분열해 줄기세포 단계를 거친 뒤 혈액이나 뼈.뇌 등 구체적 세포로 분화한다. 옛날엔 줄기세포를 간(幹)세포라고 했다. 그러나 발음상 간(肝)세포로 오인될 수 있어 지금은 줄기세포로 부른다.

줄기세포가 중요한 이유는 환자에게 필요한 세포를 선택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년 전에도 줄기세포는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동물 난자를 이용한 것이거나 냉동 수정란을 녹이는 방식이어서 전자의 경우 동물 유전자가 섞여들어올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환자의 유전자와 달라 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로 이러한 난관을 단숨에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사람 난자를 이용한 줄기세포는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전망이다. 현대의학의 중추인 수술은 병든 부위를 제거할 순 있지만 정상 부위를 만들어낼 순 없었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손상되고 부족한 세포를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다. 당장은 소아에게 흔한 1형 당뇨와 파킨슨병, 척추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의 치료에 응용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암의 경우도 암세포를 완전 박멸할 정도의 고농도 항암제를 투여한 뒤 파괴된 정상세포는 줄기세포로 보충하는 신개념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치매는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예방이나 악화의 방지는 가능하겠지만 치료는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는 이렇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세포를 컴퓨터 칩이라고 가정해 보자.

치매란 과거 우리가 신경세포에 기억시켜 놓은 결과가 소실되는 것이다. 따라서 줄기세포로 기억담당 신경세포를 보충해 줘도 단지 컴퓨터 칩만 보충될 뿐 원래 칩에 담겨있던 기억내용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치매환자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소식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10년 전만 해도 기자는 줄기세포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당대에 실현 가능한 기술로 눈앞에 다가왔다.

치매 역시 신경세포에 남아있는 기억이란 '희미한 전기적 흔적'마저 감지해 복원하는 기술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현재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끝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황우석.문신용 교수 등 국내 과학자들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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