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건강 미신에 몸을 맡기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커버스토리에서 2003년 올해를 '건강의 해'로 선포했다. 건강이 전세계 정치와 경제에서 쏟아져나온 이슈들을 누르고 전면으로 부상한 것이다. 부시와 고어의 대선에서도 미국 언론이 정한 후보간 10대 쟁점 가운데 보건의료가 네개나 차지했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무병장수로 표현되는 건강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15%를 보건의료비로 지출하며, 이것은 국방과 교육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한국인 최대의 관심사는 단연 건강이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1998년 조사 때 36.7%에서 2002년 44.9%로 늘어난 반면 돈은 98년 30.5%에서 2002년 24.4%로 줄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보자. 안타깝게도 평균수명에서 한국과 일본은 5년이나 차이가 난다. 평균수명 5년은 매우 큰 격차다.

예컨대 한해 암으로 숨지는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가정해도 남자는 4.7세, 여자는 2.5세 정도 평균수명이 연장될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민족간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평균수명 5년의 차이는 순전히 후천적인 환경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몸에 좋다면 굼벵이도 삶아 먹을 정도로 건강에 관심이 많은 우리 민족이 왜 일본에 비해 건강하지 못할까. 역설적이지만 기자는 정답이 '몸에 좋다면 굼벵이도 삶아 먹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말 그대로 건강 미신이다. 우리나라만큼 건강 미신이 판치는 국가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기자가 접한 민간요법만 수백 가지가 넘는다. 문제는 요즘 등장하는 각종 건강 미신이 과거처럼 순진한 민간요법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업주의가 교묘하게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안타까운 것은 무지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나 건강보조식품.의료기구 등 건강관련 상품광고를 보자. 광고업계에 따르면 울긋불긋 효능을 알리는 문구가 터무니없고 요란할수록 잘 팔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조악하기 그지 없다. 이들의 타깃은 애초부터 건강 지식에 어두운 순진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건강 미신을 부추기는 무리 중엔 일부긴 하지만 의사나 한의사도 있어 보인다. 머리를 좋게 한다든지, 키를 크게 한다든지, 암을 치료한다든지 등 귀에 솔깃한 내용 일색이다. 대부분 건강보험의 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고가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 미신을 추방하고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식약청 등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비록 식품이라도 A가 B에 좋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가 있어야 한다. 효과가 있다고 해도 통계적 우연의 일치가 아니란 사실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은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도 거쳐야 한다.

둘째, 전문가 집단과 언론이 할 말을 해야 한다. 'A가 B에 좋지 않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업계의 상투적인 반발에 기죽을 이유가 없다. 논리적으로 무엇인가 주장하려면 주장한 사람부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입증된 보편적 진리에 의거해 유권해석을 내려주고 언론은 이를 보도하면 그만이다.

셋째,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으면 당연히 소송해야 한다. 부작용이 없더라도 효능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동안 돈을 쓴 것은 물론 다른 치료를 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엉터리 주장을 편 업체는 망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닐까 싶다. 일거에 건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건강엔 원칙이 있을 뿐 비방은 없기 때문이다. 왜 당신은 돈을 써가면서 검증 안된 비방에 몸까지 맡기는 모르모트를 자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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