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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12월 … 非酒流가 사는 법

중앙일보

입력

연말이 되면서 K씨(34)는 '올 송년회는 또 어떻게 치를까'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괴롭다. 직장 생활 7년차인 그의 걱정거리는 바로 폭음으로 끝나는 음주문화 때문이다. K씨는 술에 약한 체질인 데다 깔끔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가 정말 싫다.

물론 그가 술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술은 기분 좋은 사람과, 기분 좋은 자리에서, 기분 좋을 만큼만 마셔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며 대학교 때까진 별 문제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지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회사의 높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술을 좋아했고 개중엔 젊은 후배들에게 술 권하는 일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듯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처음엔 술잔을 거절한 적이 많다. 하지만 '치사하다''젊은 사람이 몸을 사린다'는 말로 시작해 '분위기 망치지 마라'는 비난까지 받다가 결국 취할 때까지 마셔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과음한 다음날은 여지없이 괴롭고 멍한 상태로 온종일 일해야 했다. 그에게 있어선 술에 절어(?) 살아야 하는 12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자신이 부서장이 될 날은 아직 멀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K씨는 주량 (酒量)을 남자의 도량(?) 으로 여기고, 권주(勸酒)하는 술좌석에 끼여 어울려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한다고 여기는 우리나라 특유의 술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특히 이런 성향은 윗자리에 있는 중년 남성일수록 심하다.

이들은 대화가 부족한 억압된 문화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터라 술자리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들'이 제대로 오갔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술이 사회생활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게다가 만취할 때까지 같이 마시면서 너와 내가 함께 실수도 저질러야 '우리'가 된다는 퇴행적 집단의식을 가진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선 내가 취한 술자리에 맨정신으로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조성하게 마련이다. 때론 술잔을 거부하는 사람을 왕따(?)시키고 싶은 마음마저 들 수 있다.

이런 음주문화를 알고 난 뒤엔 슬기롭게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일 적당히 한두 잔만 마시고 눈치껏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일 땐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부득불 만취해야 할 상황에선 술 마시는 요령을 익혀 두는 게 좋다.

먼저 술은 식사 후에, 또 물을 충분히 마신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술잔이 돌 땐 최대한 천천히 마시고 그래도 과음했다 싶을 땐 물 한잔을 들이켠 뒤 화장실에서 엎드린 채 술을 토하는 것도 방법이다.

술 마시는 도중에도 틈틈이 물을 마시는 게 좋다. 술자리가 끝난 뒤 귀가해서도 수분 보충을 충분히 하고 다음날 아침엔 숙취 해소용으로 콩나물국이나 북어국을 먹고 출근한다.

불합리한 사회 문화라 할지라도 하루.이틀에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당분간 그 속에 묻혀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법을 알아두는 것도 작은 삶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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