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공익신고자 겁박하는 법무부 고발 검토 철회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정치학 박사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정치학 박사

법무부가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제보자에 대해 “의도가 불순하고 기밀 유출 혐의가 있어 보인다”라는 취지로 고발을 검토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30년 전 일이 떠올랐다.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은 1990년 5월 대기업 로비를 받은 상부 지시로 감사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감사원에서는 인사 반발로 이를 누설했다며 의도의 순수성을 훼손했고, 검찰은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구속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내부 고발자를 공격했던 상황과 똑같은 일이 30년이 지나 되풀이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캠프 최초로 공익제보지원위원회를 두고 공익신고자 보호를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반복됐다.

김학의 출금 의혹 제보자 고발 검토 #공익신고에 대한 잘못된 인식 보여

법무부는 김 전 차관의 출국을 긴급히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규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있고 그것이 법에서 규정한 부패나 공익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면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고 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권위적 정권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신고자들에 대해 휘둘러왔던 ‘불순한 의도와 기밀 누설’이라는 양날의 칼춤을 다시 보는 건 이 정부의 공익신고자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과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는 공직자가 직무 과정에서 부패나 공익 침해 행위를 목격했을 경우 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의무로 부여하고서는 정부가 나서서 기밀 누설로 처벌하겠다든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게 되면 의무 준수를 위해 신고에 나설 공직자를 기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신고하지 않았다고 징계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고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에도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책임 감면 조항이 있음에도 법무부의 기밀 누설 고발 검토는 정부에 비판적인 신고는 고발당하니까 나서지 말라는 겁박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렇게 ‘공직자의 신고 의무와 비밀 준수 면책’ 조항으로 반박을 하면 ‘의도를 갖고 폭로했다’라는 다른 축으로 제보자를 압박한다. 법에서 금품이나 근로 관계상 특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면 신고자의 동기를 갖고 공익 신고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은 그 의도를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고자 개인이 아니라 신고한 내용이다. 법무부에서는 야당 국회의원은 법에서 규정한 신고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가 있으며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출입국관리법 위반은 공익 침해 행위에 해당하며 이 경우 국회의원에도 신고할 수 있다. 다만 직권 남용의 경우 부패 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데 부패방지권익위법에서는 국회의원을 신고 기관으로 명시하진 않지만, ‘피신고자의 소속 기관·단체 등을 지도·감독하는 공공기관에 신고하는 경우’를 준용한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법무부를 감독하는 공공기관으로 볼 수 있다.

법무부는 출금 과정에서 법이 규정한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 한다. 또 설령 불가피한 상황으로 절차를 어겼다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다. 신고자에 대해 고발부터 들고나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철회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이번 제보를 포함해 일련의 내부 고발에 대해 ‘우리에게 유리한 제보자는 정의로운 의인이고, 그렇지 않은 고발자는 의도가 있는 악인’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버리지 않을 거라면, 공직자와 시민에게 공익 신고를 하면 국가가 보호하니 안심하고 하라는 교육과 홍보는 접어야 한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정치학 박사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