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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절친인데...한인섭은 왜 "조국딸 본적 없다"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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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심 재판부가 딸의 2009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를 위조한 공범으로 남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목했다. 여기엔 조 전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의 검찰 증언이 핵심 증거가 됐다. 딸을 위한 '스펙 위조''스펙 품앗이'가 결정적으로 조 전 장관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재판부 “조 전 장관, 허위 인턴십 증명서 작성”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임정엽 재판장)는 정 교수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2009년 5월 열린 세미나를 이용해 딸 조민씨의 대학 진학을 위한 허위 경력을 만들어줬다고 판단했다. 특히 남편 조 전 장관도 이 일에 공모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조씨는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인턴 활동을 한 적 없었지만 정 교수는 남편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고, 조 전 장관은 자신의 교수실에서 “2009년 5월 1일~15일 동안 고등학생 인턴으로 활동했음을 증명한다”는 허위 내용의 문서를 만들었다. 이후 당시 센터장인 한인섭 원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무국장에게 대신 직인을 날인하게 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았다.

법정에서 딸 조씨가 실제 세미나에 참여했는지 공방이 벌어졌지만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의 서울대 법대 선배이자 서울대 로스쿨 교수 동료인 한 원장이 지난해 9월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에 주목했다. 그는 “세미나장에 있었던 고등학생들을 본 기억은 있으나 조씨를 만나거나 조 전 장관으로부터 소개받은 기억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판결문에서 “한 원장이 불리한 내용의 허위진술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 조 전 장관이 “존경하는 선배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언급한 한인섭 교수가 왜 조 전 장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일까.

인턴증명서 발급일, 3년 뒤였다면?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중앙포토]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중앙포토]

인턴십 확인서에 기재된 날짜는 2009년 5월 30일이다. 서울대는 2011년 12월 28일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인 등기를 마치고 독립 법인으로 전환됐다. 이를 기점으로 이전에 만들어진 문서는 ‘공문서’, 이후는 ‘사문서’로 분류된다.

이는 한 원장이 허위 확인서 발급에 직접 관여했다면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사문서인 경우 권한을 가진 그가 허위로 인턴 확인서를 발급하더라도 사문서 위조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반면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하면 무형 위조(無形僞造: 권한 있는 사람이 허위 문서를 작성하는 일)에 해당돼 한 원장은 허위 공문서 작성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또 조 전 장관이 딸 조민씨의 대학 또는 대학원 입학에 이를 사용할 줄 알고도 발급해줬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와 허위 공문서 행사의 공범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조계에선 서울대가 독립법인으로 전환된 3년 뒤 2012년 발급한 인턴 증명서(사문서)였다면 친한 후배 부부를 위해 “조민을 봤다"고 진술할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게 해도 한 원장으로선 처벌 받을 위험이 없고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은 이 부분 무죄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으로선 2009년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증명서를 위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당시 딸 조민씨의 논문 제1저자 등재를 도와준 장영표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아들에게도 허위 인턴 확인서를 만들어 줬다. 이른바 부모 사이의 ‘자녀 스펙 품앗이’였다.

장 교수 아들은 법정에서 “제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는 아버지들끼리 서로 교환을 약속한 스펙 품앗이였다”고 증언까지 했다.

허위 공문서 작성, 조국 형량에도 영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 인턴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정경심 동양대 교수 측이 주장한 조씨의 활동 내용이 담긴 동영상. 정 교수 측은 빨간 원에 있는 여학생이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조민이라 주장했고,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 인턴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정경심 동양대 교수 측이 주장한 조씨의 활동 내용이 담긴 동영상. 정 교수 측은 빨간 원에 있는 여학생이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조민이라 주장했고,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서울대 인턴 확인서 위조는 이후 조 전 장관의 재판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적용된 11가지 혐의 중 양형 기준 형량이 가장 높은 죄가 허위 공문서 작성이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지만, 양형위원회는 1000만원 미만 뇌물은 기본 징역 4개월~1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자택 컴퓨터 하드디스크 은닉 혐의 등 증거인멸은 6개월~1년 6개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명의의 인턴 확인서를 허위 발급‧제출한 사문서위조는 6개월~2년이다.

그러나 허위 공문서 작성은 기본 8개월~2년형, 다량·반복 위조 및 행사 등으로 가중처벌할 경우 1년 6월~3년형을 권고하고 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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