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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익률 30%대 ‘황금알 거위’…사활 건 보톡스 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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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호 14면

보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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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에도 국내 보톡스 업계 2·3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소송전’이 멈추지 않고 있다. ITC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대웅제약 보톡스 제제 ‘나보타’의 21개월 수입 금지를 명령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ITC는 당초 7월 예비 판결에선 수입 금지 기간을 10년으로 정했었다. 메디톡스는 “ITC가 자사 손을 들어줬다”며, 대웅제약은 “균주가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것으로, 제조 공정에서 일부 문제만 지적한 것”이라며 서로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방침이고, 메디톡스는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국내 민·형사 소송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스·대웅제약 5년째 소송전 #1000억씩 넘게 투입, 법적 공방 #올해만 1년 치 순이익 쏟아 부어 #개발비용 덜 들어 수익성 뛰어나 #치료용 수요도 급증, 20개사 혈전 #내년 세계 시장 6조5000억 규모 #중국 등 수출 잠재력도 무궁무진

두 회사의 법적 공방은 5년째다. 2006년 첫 국산 보톡스 제제 ‘메디톡신’을 내놓은 메디톡스는 후발주자인 대웅제약이 자사 균주와 제조 공정을 도용해 나보타를 개발, 출시(2014년)했다며 2016년부터 국내외에서 대웅제약을 제소해왔다. 두 회사는 올해 소송비로만 각각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200억원대)과 엇비슷한 200억~300억원을 썼다. 2016년부터 따지면 각각 1000억원이 넘는다.

보톡스가 뭐길래 두 회사가 이렇게 매달리고 있을까. 이들과 함께 업계 1위 휴젤 등이 형성한 국내 보톡스 시장은 지난해 1473억원 규모였다. 3년 전인 2016년(868억원)의 1.7배 수준으로 성장세가 돋보이지만, 지난해 국내 전체 의약품 시장 규모(24조원대)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구나 2000억원대 연매출의 절반 이상이 보톡스에서 발생하는 메디톡스와 달리, 대웅제약은 1조원대 연매출에서 보톡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배보다 배꼽이 커 보이는’ 소송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는 보톡스 제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정도로 수익성이 뛰어나서다. 보톡스가 핵심 사업인 휴젤의 지난해 매출은 2046억원이었는데 영업이익 681억원, 순이익 503억원으로 영업이익률 33%, 순이익률 25%다. 그나마도 국내 보톡스 시장 경쟁이 격화되기 직전인 2017년(각각 56%·45%)보다는 낮아진 수치다. 메디톡스 역시 메디톡신의 안전·유효성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전까지 꾸준히 연간 40%대 영업이익률과 30%대 순이익률을 기록했다. 제약 업계 전체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7% 정도에 불과하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보톡스 제제는 다른 신약보다 개발 비용이 덜 들고 개발 기간도 짧아 수익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특히 메디톡스 등은 보톡스 제제 원자재를 직접 만들기 때문에 생산원가를 더 줄일 수 있다. 최근 수년간 후발주자들이 앞다퉈 보톡스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만, 그렇다고 아무 기업이나 보톡스 제제를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성분인 보툴리눔 독소의 균주 확보 자체는 상당히 까다롭다. 균주 도용 여부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소송전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된 이유도 그래서다. 또 균주 배양과 핵심 단백질 추출 등을 위한 연구·제조 공정 확보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하며, 주성분이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탓에 임상 시험부터 승인까지 까다로운 규제를 거쳐야 한다.

보톡스는 최근 미국 애브비가 인수한  글로벌 제약사 엘러간이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거쳐 세상에 처음 내놨다. 원래는 얼굴을 일시 마비시켜 사시나 안검 경련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용도로 개발했지만, 피부 주름을 펴는 효과 때문에 미용 제제로 각광 받게 됐다. 국내에선 미용으로 90%가량, 치료용으로 10%가량 쓰인다.

수출 잠재력이 크다는 점도 보톡스의 매력을 더하는 요인이다. 시장 분석 업체 대달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보톡스 시장은 지난해 49억 달러 규모였다. 내년에는 59억 달러(약 6조5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그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은 엘러간이 사실상 독점(점유율 70% 이상)하고 있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선 승산이 있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경우 인구는 많지만 전문 보톡스 시장이 태동 단계라 무한한 기회의 땅”이라고 설명했다.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톡스 업계의 대(對) 중국 수출액은 1억799만 달러(약 1200억원)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보톡스 제제 판매 허가를 받은 한국 기업은 없어, 보톡스 제제로 추정되는 품목의 무허가 수출액을 집계한 결과다. 올해는  휴젤이 지난 10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보톡스 제제 ‘레티보’의 중국 내 판매 허가를 받아 이달 9일 첫 공식 수출 물량을 선적했다. 대웅제약도 2022년 나보타의 중국 내 시판을 계획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치료용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호재다. 뇌성마비나 다한증 등에도 유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유희 차의과학대 약학과 교수는 “보톡스를 더 많은 질환 치료에 쓸 수 있다는 게 계속 확인되면서 국내외 의약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톡스 전쟁에 나선 국내 기업만 20곳이 넘은 가운데, 이들은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하면서 국내외 수익 창출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2015년 설립된 후발주자 칸젠이 주사기 없이 피부에 바르는 보톡스 제제 개발에 나서는 등 신기술로 각종 허들을 넘으려 하고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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