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로 본 조선시대 살인의 흔적…'살인의 진화심리학'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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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대가 2001년 이후 연간 1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추진하는 '한국학 장기기초 연구사업' 1차 성과물로 한국학 총서 시리즈 '서울대학교 한국학 모노그래프'(서울대 출판부) 10권이 나왔다.

이중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부교수, 한영우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김호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 등 여섯 명의 연구진이 조선시대 검안문서 5백31건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살인의 진화심리학-조선 후기의 가족 살해와 배우자 살해' 등이 눈길을 끈다는 평이다.

연구진은 전공을 뛰어넘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 "1백년전 조선 시대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조사해본 결과 남성의 성적 독점욕으로 야기된 살인 등 남녀의 번식 전략 충돌 때문에 야기된 사건이 가족 구성원 간 살인사건 중 57%를 차지했다"는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는 '진화 심리학'(인간의 본성과 심리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가정하는 것)의 여러 이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지적이다.

검안 문서의 한 대목을 살펴보면 "오소사가 남편의 구타가 심해 평소 안면 있는 상인 국선옥 집으로 도망갔다. 이를 추적한 남편 이용권이 오소사를 몽둥이로 살해하고 낫으로 귀.코.입술 등을 베었다"고 적고 있다. 비록 성적인 관계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정절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도망간 것을 단죄하고자 아내의 신체를 벤 것이다.

다른 사건들도 남성의 성적 독점욕과 부성을 확인하고자하는 전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위가 장인이나 장모를 살해한 사건은 모두 아내와의 별거를 계기로 벌어진 사건이었으며, 매형이 처남을 살해한 사건은 생업을 위해 외지로 출타하면서 아내를 맡겼더니 오히려 아내를 주점에 일하게 한데 격분해 일어난 것이었다.

살인 사건 비율로 따지자면 인척 관계 사건 중 77%가 부부 간 사건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 결과가 나오는 것을 "여성의 생식력이 훨씬 값비싼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체로 암컷이 임신과 양육 등 자손에 많은 투자를 하므로 짝짓기에 신중하고, 자손에 투자를 덜 하는 수컷은 암컷에 접근하기 위해 더 경쟁적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도주 혹은 이혼은 남편에게 있어 귀중한 생식자원을 잃는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상대를 붙들어두기 위해 폭력적 수단까지 동원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진 중 최교수는 동물 행동학의 관점에서 인간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궁리) 등의 저서를 펴냈다. 김 연구원은 법의학 고전 '신주무원록'(사계절)을 해설한 한국 의학사 전공의 역사학자다.

이와 관련, 최 교수는 "1백년 전 살인 사건과 현대의 사건을 비교해보면 그 동기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는 인간의 종 보편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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