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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만원 받자마자 폰 껐다···20대 보이스피싱 송금책 배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경찰청은 검찰 또는 금융기관 대출을 빙자해 300여 명에게 총 100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일당 93명을 검거했다고 지난 11월 4일 밝혔다. 사진은 압수한 피해자 돈.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경찰청은 검찰 또는 금융기관 대출을 빙자해 300여 명에게 총 100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일당 93명을 검거했다고 지난 11월 4일 밝혔다. 사진은 압수한 피해자 돈. [사진 부산경찰청]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들어간 뒤 피해자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 20대에게 “돈을 안 주면 죽인다”고 협박하며 행적을 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진경찰서,보이스 피싱 조직 송금책 20대 구속 #피해자 돈 1700만원 받아 조직에 송금않고 가로채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송금책으로 일하겠다고 속인 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송금하지 않고 가로챈 혐의(사기)로 20대 초반 남성 A씨를 붙잡아 구속한 뒤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0월과 11월 부산진구 서면과 사하구에서 각각 보이스피싱 전화에 속은 피해자 2명에게서 받은 17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뚜렷한 직업 없이 혼자 생활하며 생활고를 겪던 A씨는 지난 10월 초 ‘알바’를 구한다는 글과 신상을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렸다. 얼마 뒤 신용정보회사라는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챘다. A씨에게 “고액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송금책 역할을 할 것을 권유해서다. 송금책은 보통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서 가로챈 금액의 5% 안팎을 받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조직에 송금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신상 정보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건넨 뒤 A씨는 부산에서 송금책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0월 16일 오후 3시 서면 일대에서 조직이 알려준 대로 보이스피싱 전화에 속은 피해자를 만나 현금 1000만 원을 건네받았다.

연령별 및 성별 보이스피싱 피해자 현황. 금융감독원

연령별 및 성별 보이스피싱 피해자 현황. 금융감독원

 하지만 A씨는 이 돈을 조직에 송금하지 않고 휴대전화 전원을 끈 다음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그리고는 1000만원을 유흥비와 생활비로 대부분 썼다.

 보이스피싱 조직을 따돌린 뒤 의외로 범행이 쉽다고 생각한 A씨는 타인 명의의 신분증과 대포폰을 구한 뒤 다시 구인·구직 사이트에 신상 정보를 올렸다. 역시 ‘알바를 구한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연락을 해왔다.

 다시 송금책으로 활동하게 된 A씨는 지난달 11일 부산 사하구에서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를 만나 현금 700만원을 건네받고, 같은 방식으로 조직과 연락을 끊었다.

유형별 보이스피싱 피해자 현황. 금융감독원

유형별 보이스피싱 피해자 현황. 금융감독원

 지난 10월과 마찬가지로 A씨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수많은 협박성 연락이 왔다. “돈 안 주면 잡아 죽인다. 경찰에 신고한다” “끝까지 추적한다” 등이다.

 A씨의 도주는 오래가지 않았다.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에 나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앞서 A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자 돈을 건네받을 당시 사용된 차량 번호를 폐쇄회로TV(CCTV)로 확인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A씨를 추적했다. 경찰은 동선을 파악해 울산의 한 모텔에 숨어있던 A씨를 지난달 19일 체포한 뒤 구속했다.

 A씨는 경찰에서 “피해자한테 돈을 받아보니 욕심이 생겼다. 한 번 해보니 안 잡히고 자신이 생겨 한 번 더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경찰은 A씨와 연락한 보이스피싱 조직 2곳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보이스 피싱 조직을 검거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보이스 피싱 조직을 검거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김남수 부산진경찰서 지능수사팀장은 “A씨가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보고 욕심이 생겨 피해자 돈을 가로챘다고 진술한다”면서 “구인·구직 사이트에 연락처 등을 남기면 보이스피싱 조직이 나름의 면접을 본 뒤 송금책을 구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돈을 벌기 어려워지면서 송금액을 가로채는 사건이 간혹 발생한다”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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