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달의 예술

이건용의 ‘박하사탕’

중앙일보

입력 2020.11.06 00:14

업데이트 2020.11.0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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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그 꿈이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박하사탕’에서 순임이 수줍어하며 영호에게 한 말이다. 2000년 개봉된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담고 있지만, 평범한 한 인간을 통해 이를 여린 감성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큰 여운을 주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올해 이 영화는 한국 현대음악계의 거목 이건용에 의해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했다. 오페라 ‘박하사탕’(대본 조광화·사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으로 창작됐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스튜디오와 합창연습실에서 무관중 촬영돼 10월 31일부터 열흘간 콘서트 오페라로 유튜브에 공개 중이다.

이건용은 어떤 작곡가인가? 합창곡 ‘분노의 시’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표현하고자 했고, ‘제3세대’ 작곡 동인을 만들어 무비판적인 서양음악 수용에 제동을 걸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슈베르트를 좋아하고, ‘슬픈 카페의 노래’(최영미 시)에서는 가슴을 절절히 녹이는 서정성을 보여준 작곡가이기도 하다. 오페라 ‘박하사탕’에서는 이러한 이건용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이건용의 ‘박하사탕’

이건용의 ‘박하사탕’

2막 7장으로 구성된 이 대하 오페라는 영화와 유사하게 ‘1999년 5월’(1장)에서 시작하여 ‘1997년 가을, 강가 들꽃 언덕’(7장)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전개된다. “삶과 죽음 한꺼번에 있으니 살아 있으면 보겠지요”(하종오 시)라는 이건용의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래가 서두와 말미에 인용되어 오페라의 분위기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영호가 군인으로 참가했던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의 고문 현장은 긴박한 아리아와 리듬이 부각된 관현악으로 실감나게 표현되었고, 특히 군부대의 모습을 그린 5장에는 강 대위의 강압적인 어조의 아리아와 빠른 템포의 합창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렇지만 시위대가 노래하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이러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고, 죽음을 앞둔 순임의 아리아 ‘기억하세요’는 첼로의 독주 선율과 조화를 이루며 부드럽게 흘렀다. ‘나뭇꾼과 선녀’를 암호로 노래하는 박 병장은 웃음을 선사하였고, 아들을 위한 주먹밥을 나누어주는 아낙네들은 꽹과리를 동반한 신명나는 전통 장단에 노래를 한다.

그간 오페라 창작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이건용은 대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유감없이 선보였으며, 무엇보다 합창은 오페라의 백미로 극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특히 ‘망월동 묘역’(2장)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합창은 그 어떤 애도가보다도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이건용의 ‘박하사탕’은 사회의 거센 물결을 비껴갈 수 없는 연약한 개인이 삶의 생명을 잃지 않는 모습을 음악의 힘으로 풀어냈다. 실황공연으로 이 힘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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