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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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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2004년 ‘시실리 2㎞’로 데뷔한 신정원 감독의 코미디는 보편적 웃음보다는 독특한 코드를 겨냥한다. 기괴한 크리처, 초현실적 분위기, 좌충우돌 상황…. 그의 개성은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도 여전하며, 관객들의 취향에 따른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외계에서 온 죽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남편 만길(김성오)에 대한 아내 소희(이정현)의 의심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는 장 소장(양동근)에게 의뢰하고, 만길이 숱한 여성들과 만나고 있음이 밝혀진다. 소희는 친구들과 함께 남편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이때부터 영화는 카오스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여기서 인상적인 포인트는 장 소장이다.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거의 좀비가 되어 돌아온 그는 뭔가 기억 날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묻는다. “초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양동근 특유의 말투와 결합되어 반복되는 이 대목은, 자칫하면 퍽퍽한 장르 소동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영화에 숨통을 틔워 준다. 배우가 지닌 사소한 뉘앙스가 영화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의 양동근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모두 야단법석을 떠는 와중에 홀로 진지한 장 소장. 만약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당신을 취향 저격했다면, 그건 자신만의 호흡으로 완급 조절하며 영화를 끌고 간 장 소장 덕분일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