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흥규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과의 공존 위해서라도 대북 억제력 확보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방향 잃은 국방개혁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대구경 조종 방사포. [뉴스1]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대구경 조종 방사포. [뉴스1]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책임 국방, 강한 안보 구현’이란 슬로건을 바탕으로 국방개혁 2.0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중기 국방개혁 1.0을 넘어, 보다 자주적인 국방 역량을 갖추겠다는 의지였다. 이는 지난 보수 정권이 북한의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정치적으로 활용했지만, 실제 자체 국방 역량에 대한 노력은 대단히 미흡하였다는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등 기반 생존 우선하는 정책으로 선회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위력을 확대하는 게 최선 #전작권 조기 전환, 대북 억제와 국방 자율성 확보에 도움 #한·미 동맹을 대중국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도 대비해야

경제성장률을 훨씬 상회하는 연평균 7.5%씩의 국방비 증액, 국내총생산(GDP) 대비 2.4% 수준에서 3%의 국방 예산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우선적인 목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책은 물론이고 유사시 북한을 신속히 무력화하는 역량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대량응징보복(KMPR)을 중심으로 한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정권 초 미국과 협상하여 그간 500㎏으로 한정되어 있던 미사일의 중량 제한을 해제하였다. 차일피일 연기했던 전시작전권도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의지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비한 자체의 전략 구성, 기획 능력, 임전의 심리 상태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했다.

보수 정부가 합의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의 전환 조건을 보자면 그 목표는 영원히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문 정부 출범 초 국방개혁의 입안자들은 스스로 북한과 전쟁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강하였다. 국방 자율성을 지금 강화하지 않으면, 점차 격화될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될 수도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남북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천마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연합뉴스]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천마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연합뉴스]

정부 출범 3년이 지난 현재 문 정부가 그간 국방과 안보에 소홀하였고, 북한과 이상주의적인 평화만 추구한다는 인식이 강화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 이면에는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놓고 처음 기획한 임기 내 반환에서 조기 반환이나 조건에 기반을 둔 조기 반환으로 전환될 만큼 내부적인 저항이 컸다. 2018년 일시적으로 찾아온 한반도의 봄을 경험하면서, 초기 국방개혁의 내용이 완화되거나 변질되었다. 새로이 제시된 2021~25 국방 중기계획은 그 규모와 내용의 현란함에도 불구하고 향후 우리의 안보 환경에 대한 인식이 모호하고, 따라서 비전·전략·방안들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 막대한 예산 낭비, 전술적인 혼란, 개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남긴다.

최근 2년 동안 미·중 전략경쟁은 ‘신냉전’이라 부를 정도로 격화되고 있다. 신냉전의 세계는 고전적인 국제 정치의 환경인 정글의 세계와 유사할 것이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자위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자신의 생존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핵심은 핵무장 강화, 비전통 공세 역량의 우위 확보, 자력갱생이다. 이제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는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북한은 대신 한국과 주한미군이 방어가 불가능할 정도의 핵·미사일 역량을 확보했다. 국제정치학의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의 선의와 협력에 기대기보다는 안보적 대응 역량 구축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라고 답한다. ‘보복적 억제 능력’의 확보는 불가피해졌다. 최선의 결과보다는 차선으로 책임 있는 결과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신냉전 시기에는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주둔조차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게 하려면 한·미 동맹을 대북한 동맹이 아니라 대중국 동맹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하거나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이 추진하는 핵잠수함이나 경항모의 보유는 대북한용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변환에 더 역점을 둔 국방개혁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존하는 적대 세력에 대한 대응과 잠재적 위협 세력에 대한 대응을 구분하고, 전략적 선택과 집중, 안배에 기반해서 중기 국방개혁을 추진하고 있는가이다. 엄청난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요구한다. 이것이 부재한 중기 국방개혁은 재앙일 수 있다. 한 예로 경항모 구비 계획은 주변국들과 불필요한 이해의 충돌, 엄청난 국가 예산을 낭비하면서 정작 그들과의 전장 상황에서는 무기력할 개연성이 크다. 무인화·초음속화·인공지능(AI) 등으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보다는 마치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안주하면서 집단 이익 게임에 몰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존재한다.

초기 국방개혁 정신으로 복귀해야

미 대선 여부와 관계없이 신냉전 상황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예상이다. 문 정부는 초기 국방개혁 2.0의 정신으로 복귀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추진하고 있는 전시작전권의 조기 전환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신냉전 시기에 한국의 생존을 지키고 충분한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로써 전작권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격화는 우리의 국방 자율성 확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북한과 공존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자국 안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북 평화체제 구축을 과감히 제안할 수 있다. ‘신뢰’와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남북한은 현재로써는 이를 돌파할 자신감과 여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 경우 모두 상대의 선의를 믿고 최상의 결과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 이기심을 발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국민의 불안을 달래주고, 신뢰에 기반을 두어 공감대를 획득하는 것이 곧 대북정책이나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역량을 증진하는 길이다.

국방개혁과 전작권 전환, 미·중 국가 이익에 직접 영향 미쳐

중기 국방개혁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국방개혁 2020’으로 발표됐다. 문재인 정부가 현 국방개혁을 ‘국방개혁 2.0’이라 이름 지은 것은 당시의 국방개혁을 1.0으로 보고,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예상한 2020년의 국제 안보 환경은 현재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잘 유지되고, 동북아 지역은 상호의존성이 증대되면서,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더 커져서 북한의 군사 위협은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제였다.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지역 내 잠재적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오히려 더 높게 평가하였다.

이명박 정부 시기 2009년에 ‘국방개혁 2020 수정안’이 제시되었고, ‘다기능 고효율의 선진 국방’을 구현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특히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급박해진 상황에서 제시된 2012년 ‘국방개혁 2030’은 효율적인 국방태세를 갖추기 위한 군부의 상부구조 개편을 담았다. 그러나 이를 국방개혁법안에 담아 실현하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에는 ‘국방개혁 2030 수정안’이 제시되었고, ‘혁신창조형의 정예화된 선진 강군’ 슬로건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방산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방개혁은 표류하였다.

그간 한·미는 2007년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군의 주도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2012년까지 전시작전권을 조기 전환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러나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계기로 2015년으로 재조정되었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으로 무기 연기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에 제출된 새로운 국방개혁 2.0은 북한의 위협, 주변국 등 잠재적 위협, 초국가적·비군사적 위협을 3대 핵심 안보환경으로 인식하였다.

신냉전 상황에서 국방개혁과 전작권 전환 문제는 서로 연동되면서, 우리 군의 역량 확보를 위한 기회 차원에서 점차 미·중의 국가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변모하고 있다. 파고가 너무 높아지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