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성 시비 휩싸인 KBS "외풍에 정면대응" 활로찾기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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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왜 이리 바람잘 날 없나. 윤리강령 발표한 게 엊그젠데….”

8일 만난 KBS의 한 간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들어 서동구 사장 퇴진, 정연주 사장 일가의 병역 문제, 개혁 프로그램의 이념성 논란, PD 외유성 출장 파문, 송두율 교수 미화 공방…등 악재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송두율 건과 관련해선 검찰수사와 특별감사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같은 시간 일선 PD들은 격앙된 모습으로 결의문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들을 관통하는건 '한숨'이 아니라 '분노'였다. 일부 신문.한나라당과의 전면전도 선포왰다. KBS사(史)에 유례없는 전쟁 국면이 시작될 조짐이다.

◇'편향성' 논란 확산=지난 2일 KBS 국감장.'국정감사가 사장 검열이냐''KBS 길들여지지 않는다' 등의 피켓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런 압력도 야당 의원들의 거친 공세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KBS는 노무현 정부에 코드를 맞추고, 국민에게는 '인물현대사' 등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의식화 교육을 시키고 있다." 한나라당.자민련 의원들은 KBS의 이념적 편향성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를 미화했다는 게 실례로 거론됐다.

국감 뒤에도 사태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원칙론적 답변이라고는 하지만 검찰총장은 '송두율 미화'방송과 관련해 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동지인 줄 알았던 민주당도 KBS의 이념적 정체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또 8일 열린 이사회에선 최근 KBS의 행보를 우려하는 일부 이사들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런 가운데 몇몇 보수단체는 KBS의 아킬레스건인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들먹이고 나왔다.

◇정면 대응 나선 KBS=지난 6일 정연주 사장이 아시아방송협회(ABU)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가운데, KBS 사원들의 대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일선 PD와 기자들은 "무책임한 KBS 흔들기를 더이상 방치했다가는 공영방송의 존립이 흔들린다"며 전사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해 KBS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자 대응도 수세에서 공세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8일은 각종 회의로 하루종일 북적거렸다. 노조.시민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이 끝나기 무섭게 8백여명의 회원을 둔 PD협회의 긴급 회의가 이어졌다. 저녁에도 PD협회.기자협회 등 각종 단체 관련자들이 회동, 공동 대응을 약속했다.

공영성 시비를 차단할 카드도 준비 중이다. 다음달 개편에서 KBS는 선정성 시비를 불러 왔던 2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을 싹 '정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KBS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사장은 "시청률에 신경쓰지 마라. 공영성 회복이 절체절명의 과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어닥친 전운(戰雲)=이날 KBS PD들은 신문개혁과 정치개혁 여론을 확산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마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논리를 전파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과 초점이 어디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MBC와 공동으로 '한나라당 언론관'이란 다큐멘터리 제작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자칫하면 방송과 신문, 정치권의 무한 대결국면으로 확대될 판이다.

하지만 상대가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신문은 KBS가 처한 공영성 위기를 더욱 큰 목소리로 외칠 것이 분명하며, 한나라당도 원내 다수당의 힘을 내세워 KBS를 코너로 밀어 붙일 공산이 크다. 모두가 상처뿐인, 지루한 싸움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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