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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X"는 무죄 "개XX"는 유죄…비속어 소송 "조국 똘마니"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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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오종택 기자, 뉴시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오종택 기자, 뉴시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을 “조국 똘마니”라고 발언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에게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와 관련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똘마니’라는 표현은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비속어 소송 판례를 통해 이를 알아봤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6월 김 의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검찰 역사상 최악의 검찰총장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고, 이에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에 “누가 조국 똘마니 아니랄까 봐. 사상 최악의 국회의원”이라고 적었다. 7일 진 전 교수를 통해 김 의원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 의원은 10일 “진 전 교수 소송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국감 중이니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며 자기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똘마니’ 표현, 대법원은 유‧무죄 판결 엇갈려

2013년 대법원은 인터넷 카페를 향해 ‘똘마니’라고 욕한 황모씨에게 무죄 취지의 선고를 내렸다. 2009년 한 인터넷 카페 회원이 용산참사 희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리자 황씨는 “꼴통 놈들” “전문시위꾼 똘마니들” 등의 글을 달았다. 이후 그는 카페 운영자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은 황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누구나 가입 가능한 인터넷 카페의 일반 회원을 대상으로 게재한 글이기에 운영자를 모욕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결국 황씨는 이후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2015년 대법원은 전교조를 향해 ‘똘마니’라고 표현한 보수단체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단을 내놨다.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3곳은 2009년 3~4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일하는 학교 앞에 현수막이 붙은 승합차를 세워두고 22차례에 걸쳐 시위를 벌였다. 현수막에는 “김정일이 이뻐하는 주체사상 세뇌하는 종북 집단 전교조” “섹노총의 똘마니로 전락한 전교조는 석고대죄하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1심은 구체적 뒷받침도 없이 전교조를 악의적으로 비난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총 4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이는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씨X”는 무죄, “개XX”는 유죄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이 밖에도 법원이 모욕죄로 판단하는 기준은 같은 비속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법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피해자의 명예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경멸적 감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혼잣말로 욕을 한다거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표현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모욕적 기분을 느꼈더라도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로 시비가 벌어지자 “아이 씨X”라고 말한 A씨에게 2015년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구체적인 상대방을 밝히지 않은 점이 그 이유가 됐다. 대법원은 “단순히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흔히 쓰는 말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택시기사를 특정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택시기사와 말다툼을 하던 중 출동한 경찰관을 향해 “뭐야 개XX야” “씨X놈들아”라고 욕설한 B씨에게는 유죄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2017년 “안전하게 귀가하게 하려는 경찰관 개인을 향해 경멸적 표현을 담은 욕설을 했다”며 “단순히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경찰관 개인의 외부적 명예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는 모욕 행위”라고 판단했다.

국정농단 재판이 한창이던 2017년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를 빗댄 이들이 모욕죄로 처벌받기도 했다. “네가 최순실이냐”고 말한 30대 남성 직장인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최순실 닮았다”고 말한 남성은 벌금 100만원을 냈다.

이 때문에 ‘똘마니’라는 표현이 법적으로 모욕죄에 해당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무죄가 나온 판결은 똘마니라고 지칭한 대상이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점에서 진 전 교수의 발언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죄가 나온 판결 역시 단순히 ‘똘마니’라는 표현보다는 ‘주체사상 세뇌’ 등 다른 표현들이 허위사실 적시로 문제가 됐기에 진 전 교수 발언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함량 미달 등의 표현도 모욕죄로 인정된 바 있다”며 “다만 소송 제기자가 국회의원인 만큼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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